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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서 착안한 아이디어... 600원짜리 기구로 1시간만에 세균 감염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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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춘살어 작성일20-05-19 11:17 조회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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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경 IBS 그룹리더, 장난감 '피젯 스피너' 본딴 신속·저렴 진단법 개발
인도서 실험결과 1시간 이내 100% 정확도… "개도국에서 활용 기대"

손으로 돌리는 장난감 피젯 스피너(왼쪽)와 진단용 스피너(오른쪽). /IBS 제공
국내 연구진이 세균성 감염병을 1시간 이내로 진단할 수 있는 600원짜리 수동 기구를 개발했다.

조윤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그룹리더 연구진은 장난감 '피젯 스피너'에 착안해 수동 진단용 스피너를 발명했다고 19일 밝혔다. 저렴하고 진단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 항생제 오남용을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세균성 감염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병원에서 보통 하루 이상 걸리는 배양 검사가 필요하다. 어느 세균인지를 알아야 적절한 항생제를 처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개도국에서는 큰 병원에서만 배양 검사가 가능한 탓에 진단에 일주일까지 걸리기도 한다. 때문에 작은 의원급 병원에서는 환자의 증상만 보고 항생제를 처방하는데, 이때 잘못된 종류나 양을 처방할 수도 있다. 잘못된 처방은 세균이 내성을 갖도록 하고 이는 더 높은 단계의 비싼 항생제를 더 찾도록 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연구진은 손으로 돌리는 장난감 피젯 스피너를 닮은 '미세유체칩'을 만들었다. 미세유체칩은 마이크로미터 규모의 구조물에 시료를 흘려 여러 실험을 할 수 있는 '칩 위의 실험실'이다.

미세유체칩에 환자의 소변을 1ml 넣고 1~2회 돌리면 필터 위에 세균이 100배 이상 농축된다. 여기에 시약을 넣으면 세균의 종류와 농도에 따라 다양한 색깔이 나타나, 육안으로 진단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농축에 5분, 시약 반응에 45분이 걸려 1시간 이내에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

진단용 스피너로 소변의 세균을 검출하는 과정. /IBS 제공
또 같은 방법으로 시약을 넣어 세균의 항생제 내성 검사도 할 수 있다. 이 역시 1시간 이내에 가능하다.

연구진은 인도 티루치라팔리시립병원의 환자 39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실제로 1시간 이내에 100% 정확도로 진단이 가능했다. 병원에서 세균 배양에 실패해 진단이 불가능한 경우까지도 정확히 진단해냈다. 이에 따라 현지에서 일반 처방으로 59%에 달하는 항생제 오남용 비율을 0%로 줄일 수 있음을 보였다.

연구진은 "진단용 스피너는 개당 600원으로 매우 저렴하고 비전문가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윤경 그룹리더는 "이번 연구는 미세유체칩 내 유체 흐름에 대한 기초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미세유체칩 구동법을 개발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항생제 내성검사는 난이도가 높은데다 현대적인 실험실에서만 가능했는데, 이번 연구로 빠르고 정확한 세균 검출이 가능해져 오지에서의 의료 수준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에 19일자로 게재됐다.

[김윤수 기자 kys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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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본 조선일보 100년] [29] 1957년 현대작가초대미술전

本紙와 젊은 예술가들 의기투합, 사실주의 중심 國展에 맞서
전위적 추상 미술 표방하며 현대 미술의 새 장 열어… 김환기·박수근·장욱진 등 참여


"새 나라를 이룩하고 새 문화의 창조를 다시 구상하는 오늘 우리 미술계는 민족 정서의 현대적 표현을 보여야 할 때를 맞이했다."

1957년 10월 9일 자 조선일보 1면 한복판에 '현대작가초대미술전'(이하 현대미전)을 개최한다는 사고(社告)가 실렸다. 6·25 직후 혼란기에 대규모 미술 전시회를 열기는 쉽지 않았다. 현대미전에 1회부터 참가한 화가 김병기(104)는 "조선일보 주필 홍종인이 멤버를 정해 나와 유영국, 김영주 세 명이 발기 멤버가 됐다"고 회고했다. 주필 겸 부사장으로,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홍종인은 미국 록펠러가(家) 3대손 넬슨 록펠러를 만나면서 예술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했다. 훗날 미국 부통령이 되는 거물 정치인 록펠러가 1957년 방한했을 때 정치보다 예술을 화제 삼아 열을 올리며 얘기하는 모습에서 감명받았다는 것이다.

제1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 출품작 문우식의 ‘소녀 있는 공방’. 자신의 화실을 묘사한 작품으로, 사물을 단순화한 기법은 당시로서는 낯선 것이었다. /문우식 화백 유족 제공
1957년은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도 중요한 해였다. 사실주의·구상미술 중심의 보수적 '국전(國展)'에 맞서 전위적·현대적 예술을 표방하는 '반(反)국전' 단체들이 미술계 곳곳에 출현했다. 그러나 덕수궁 돌담길에 작품을 걸었던 1960년 '벽전(壁展)'의 사례에서 보듯, 새바람을 일으키려던 젊은 작가들의 목소리는 거리의 외침에 그쳤다.

현대미전은 덕수궁미술관·경복궁미술관처럼 본격적인 전시 공간을 이들에게 열어주고 여러 갈래의 목소리를 하나의 흐름으로 규합해 낸 구심점이었다. 자유당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던 조선일보와 젊은 예술인들의 열망이 만나 불꽃을 일으킨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은 드디어 현대라는 새로운 시간과 정신세계로 돌입하였다. 이처럼 힘들고 그 성과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지 않는 예술 사업에 많은 희생과 노력을 경주한 그들(조선일보)의 양식(良識)은 드디어 많은 미술인과 화단이 숙제로 남겨둔 난문제를 해결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1957년 11월 27일 자 평론가 이경성의 전시평)

1957년 11월 22일~12월 8일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전시에는 동양화부 이응노·박생광, 서양화부 천병근·문우식·김병기·김창열·박서보 등이 초대됐다. 개막 다음 날 조선일보는 참여 작가 36명, 출품작은 70점이라고 썼다. 12월 6일 자에는 주한 서독 공사이자 미술 비평가인 리하르트 헤르츠의 평론이 실렸다. "이 전시회에는 우아하거나 고상한 모습이 아니라 잔혹한 정열이 충일되어 있었고 '스타일'이 아니라 자유와 해방이 있었고 전통이 아니라 무인지경의 강렬한 진실성에 사로잡힌 열광이 약동하고 있었다."



일반 공개 첫날이었던 1962년 4월 11일 제6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을 둘러보는 관람객들. 이날 하루만 2629명이 다녀가고 뉴욕타임스 도쿄 지국장이 취재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이듬해 열린 제2회 현대미전은 조각을 추가하며 회화에서 조형 예술로 영역을 확장했다. 3회 때는 김환기·박수근·장욱진 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이 초대 작가 명단에 등장했고, 6회부터는 영국·이탈리아·브라질 등 외국 작가들까지 초대해 명실상부한 국제전으로 성장했다.

현대미전이 쇠퇴한 것은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였다. 1964년 4월 열릴 예정이던 제8회전은 개막을 일주일여 앞두고 '전시회장인 경복궁미술관이 사용불능하게 되어' 무기한 연기됐다. 내막은 그해 10월 27일 자 사고에 드러난다. "학생 '데모'로 군대가 경복궁에 주둔하고 잇달아 계엄령 선포…."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던 시절이었다. 이듬해 제9회전도 당국에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경복궁미술관 사용 불가를 통지하면서 불발된다. 이후 개최와 취소를 반복하다가 1969년 13회를 마지막으로 현대미전은 막을 내린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미술 분야 문화 사업은 프랑스 현대명화전(1970), 밀레 특별전(1972) 등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에도 '한국근현대회화 100선'(2013), '이중섭, 백년의 신화'(2016) 등 블록버스터급 전시로 계속되고 있다.



[채민기 기자 chaepl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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