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일 2002 한·일월드컵 마스코트들과 음란물 사이트의 상관관계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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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보나 작성일19-12-02 21:48 조회24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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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2월2일 2002 한·일월드컵 마스코트 공개, 그 후…
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공식 마스코트를 기억하십니까? 축구를 사랑하는 가상의 세계 ‘아트모’에 살고 있다는 세 캐릭터가 그 주인공입니다.
10년 전 오늘자 경향신문 1면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의 상징이 양국에서 동시 공개됐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아트모족들은 며칠간 의도치 않은 소동에 휩싸이게 됩니다. 과연 무슨 일이었을까요?
1999년 12월 공식 발표된 2002 월드컵 마스코트들.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발표한 세 주인공은 상상 속 우주왕국 ‘아트모’에 살고 있는 캐릭터들이었는데요. 아트모는 영어단어 ‘atmosphere’(분위기)에서 따온 말로, 축구를 사랑하는 분위기가 넘쳐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들은 기존 마스코트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다른 대회 마스코트는 수탉을 형상화한 98년 프랑스월드컵의 ‘푸틱스’, 이탈리아 반도와 국기색상을 상징하는 90년 이탈리아월드컵의 ‘차오’, 오렌지를 의인화한 82년 스페인월드컵의 ‘나란지토’처럼 주로 사람이나 동·식물 혹은 개최국을 떠올릴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졌는데요. 2002년 한·일 월드컵 마스코트들은 가상의 동화 속 주인공이었습니다. 주인공도 하나가 아니고 셋이나 되었고요.
1999년 12월2일 경향신문 1면
이들은 한 영국 업체에서 1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개발했는데요. 두 나라가 월드컵을 동시 개최하는 상황은 흔치 않았고, 어느 한쪽 국가를 상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아예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조직위는 3차원의 입체적 캐릭터들이 2002년 월드컵에 참가하면서 겪는 모험과 환상의 이야기들을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월드컵을 전세계에 홍보할 계획도 전했습니다.
캐릭터들을 언뜻 보아도 양국 중 어느 나라의 느낌도 들지 않습니다. 한쪽으로 쏠렸다는 말이라도 나올까봐 두 나라의 느낌을 아예 넣지 않으려 애쓴 것은 아닌가 싶네요.
덕분에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을 향해 “지나치게 상업적인 측면만 의식해 전혀 새로운 가공의 마스코트를 만들어,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1999년 12월2일자 경향신문 34면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공식 마스코트가 발표된 바로 다음날, 아트모에 대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데요.
아트모의 영문철자인 ‘atmo’에 가장 흔한 도메인 중 하나인 ‘.com’을 붙이면 화면에 “이곳은 성인사이트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알몸을 드러낸 금발여자 모습이 등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트모닷컴’은 인터넷 상에서 이미 음란물 사이트로 사용되고 있는 주소였던 것이죠.
인터넷을 통해 월드컵 마스코트를 검색하려던 누리꾼들은 의도치 않게 ‘살색 화면’을 보고 아연실색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월드컵 조직위원회에 항의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국 2002년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 김용집 사업국장은 “아트모는 단순한 가상 왕국의 이름이지 마스코트의 이름과는 상관이 없다”면서 “국제축구연맹(FIFA)도 사전에 인터넷 도메인 이름을 검색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세 캐릭터의 개별 이름은 일반인 대상의 공모를 통해 결정하기로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식 이름이 확정될 때까지 아트모닷컴을 검색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마케팅 대행사가 한국월드컵조직위에 공문을 보내 “마스코트의 잠정적 공식 명칭은 ‘2002 FIFA 월드컵 한·일 마스코트’”라면서 “‘아트모’라는 통칭은 결코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그런데 ‘아트모 사태’는 하룻밤이 지나자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전날까지 음란물 사이트였던 ‘아트모닷컴’이 밤 사이에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축구화와 유니폼을 취급하는 축구용품 판매 전문 사이트로 변신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사이트에는 한·일월드컵 마스코트 덕분에 매일 5만명 이상이 방문한다는 홍보문안과 함께 사이트의 주소를 팔겠다는 도메인(인터넷 주소) 경매 입찰 공고까지 내걸려 있었습니다. 1만달러부터 시작해 100달러 단위로 입찰가격을 입력할 수 있다면서 말이죠.
결국 며칠 뒤 ‘아트모닷컴’ 사이트가 5만 달러에 한국인 사업가에게 팔리면서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이 사태는 99년 스포츠계 ‘최악 사건’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씁쓸한 뒷맛을 남겼죠. 월드컵 마스코트와 연관된 이름을 정하면서 관련 사이트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검색해보지 않았다는 건, 월드컵 홍보 준비가 그만큼 허술했다는 점으로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2001년 4월 2002 월드컵 공식 마스코트 이름 발표회장에서 이연택(맨왼쪽), 정몽준(맨오른쪽) 월드컵 한국 조직위원장이 마스코트 니크, 아토, 케즈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연합뉴스
이후 2002 한·일월드컵 공식 마스코트의 이름은 공모를 통해 아토, 니크, 케즈로 정해집니다. 그리고 <스페릭스>라는 이름으로 독일에서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영화와 26부작 TV시리즈가 만들어져 지상파를 통해 방영됩니다. 파란만장한 그들의 모험 이야기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사람들도 여럿 있었을 듯하네요.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
▶ 장도리
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2월2일 2002 한·일월드컵 마스코트 공개, 그 후…
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공식 마스코트를 기억하십니까? 축구를 사랑하는 가상의 세계 ‘아트모’에 살고 있다는 세 캐릭터가 그 주인공입니다.
10년 전 오늘자 경향신문 1면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의 상징이 양국에서 동시 공개됐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아트모족들은 며칠간 의도치 않은 소동에 휩싸이게 됩니다. 과연 무슨 일이었을까요?
1999년 12월 공식 발표된 2002 월드컵 마스코트들.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발표한 세 주인공은 상상 속 우주왕국 ‘아트모’에 살고 있는 캐릭터들이었는데요. 아트모는 영어단어 ‘atmosphere’(분위기)에서 따온 말로, 축구를 사랑하는 분위기가 넘쳐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들은 기존 마스코트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다른 대회 마스코트는 수탉을 형상화한 98년 프랑스월드컵의 ‘푸틱스’, 이탈리아 반도와 국기색상을 상징하는 90년 이탈리아월드컵의 ‘차오’, 오렌지를 의인화한 82년 스페인월드컵의 ‘나란지토’처럼 주로 사람이나 동·식물 혹은 개최국을 떠올릴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졌는데요. 2002년 한·일 월드컵 마스코트들은 가상의 동화 속 주인공이었습니다. 주인공도 하나가 아니고 셋이나 되었고요.
1999년 12월2일 경향신문 1면
이들은 한 영국 업체에서 1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개발했는데요. 두 나라가 월드컵을 동시 개최하는 상황은 흔치 않았고, 어느 한쪽 국가를 상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아예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조직위는 3차원의 입체적 캐릭터들이 2002년 월드컵에 참가하면서 겪는 모험과 환상의 이야기들을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월드컵을 전세계에 홍보할 계획도 전했습니다.
캐릭터들을 언뜻 보아도 양국 중 어느 나라의 느낌도 들지 않습니다. 한쪽으로 쏠렸다는 말이라도 나올까봐 두 나라의 느낌을 아예 넣지 않으려 애쓴 것은 아닌가 싶네요.
덕분에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을 향해 “지나치게 상업적인 측면만 의식해 전혀 새로운 가공의 마스코트를 만들어,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1999년 12월2일자 경향신문 34면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공식 마스코트가 발표된 바로 다음날, 아트모에 대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데요.
아트모의 영문철자인 ‘atmo’에 가장 흔한 도메인 중 하나인 ‘.com’을 붙이면 화면에 “이곳은 성인사이트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알몸을 드러낸 금발여자 모습이 등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트모닷컴’은 인터넷 상에서 이미 음란물 사이트로 사용되고 있는 주소였던 것이죠.
인터넷을 통해 월드컵 마스코트를 검색하려던 누리꾼들은 의도치 않게 ‘살색 화면’을 보고 아연실색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월드컵 조직위원회에 항의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국 2002년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 김용집 사업국장은 “아트모는 단순한 가상 왕국의 이름이지 마스코트의 이름과는 상관이 없다”면서 “국제축구연맹(FIFA)도 사전에 인터넷 도메인 이름을 검색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세 캐릭터의 개별 이름은 일반인 대상의 공모를 통해 결정하기로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식 이름이 확정될 때까지 아트모닷컴을 검색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마케팅 대행사가 한국월드컵조직위에 공문을 보내 “마스코트의 잠정적 공식 명칭은 ‘2002 FIFA 월드컵 한·일 마스코트’”라면서 “‘아트모’라는 통칭은 결코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그런데 ‘아트모 사태’는 하룻밤이 지나자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전날까지 음란물 사이트였던 ‘아트모닷컴’이 밤 사이에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축구화와 유니폼을 취급하는 축구용품 판매 전문 사이트로 변신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사이트에는 한·일월드컵 마스코트 덕분에 매일 5만명 이상이 방문한다는 홍보문안과 함께 사이트의 주소를 팔겠다는 도메인(인터넷 주소) 경매 입찰 공고까지 내걸려 있었습니다. 1만달러부터 시작해 100달러 단위로 입찰가격을 입력할 수 있다면서 말이죠.
결국 며칠 뒤 ‘아트모닷컴’ 사이트가 5만 달러에 한국인 사업가에게 팔리면서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이 사태는 99년 스포츠계 ‘최악 사건’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씁쓸한 뒷맛을 남겼죠. 월드컵 마스코트와 연관된 이름을 정하면서 관련 사이트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검색해보지 않았다는 건, 월드컵 홍보 준비가 그만큼 허술했다는 점으로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2001년 4월 2002 월드컵 공식 마스코트 이름 발표회장에서 이연택(맨왼쪽), 정몽준(맨오른쪽) 월드컵 한국 조직위원장이 마스코트 니크, 아토, 케즈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연합뉴스
이후 2002 한·일월드컵 공식 마스코트의 이름은 공모를 통해 아토, 니크, 케즈로 정해집니다. 그리고 <스페릭스>라는 이름으로 독일에서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영화와 26부작 TV시리즈가 만들어져 지상파를 통해 방영됩니다. 파란만장한 그들의 모험 이야기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사람들도 여럿 있었을 듯하네요.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
▶ 장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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