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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생명보호 차원서 올바른 결정 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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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솔린 작성일19-03-26 01:44 조회3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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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대안 마련,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함수연 낙태반대운동연합 회장(왼쪽)이 25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낙태죄 대안 마련, 무엇이 쟁점인가’ 토론회에서 “여성 인권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은 태아를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성산생명윤리연구소와 생명운동연합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낙태죄 대안 마련,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열고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결정과 생명·성윤리의 재정립을 촉구했다.

배인구(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국가는 태아든 영아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현행법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정신질환, 강간,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임신 등 일정한 범위에서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 변호사는 “의학 발달로 20주에 출산한 미숙아도 인큐베이터에서 생존할 수 있게 됐는데, 역설적이게도 같은 처지에 있는 태아를 낙태로 죽이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드러나지 않게 낙태시술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낙태죄로 처벌되는 경우가 한 건도 없다고 해도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 차원에서 형법에선 반드시 처벌이 규정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낙태는 배아윤리 등 다른 생명윤리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헌재에서 인간의 생명보호 차원에서 태아를 보호하는 바른 결정을 내리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엄수희 생명윤리연구소 부소장은 “낙태죄를 폐지하면 낙태가 줄어든다는 분명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낙태를 비범죄화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엄 부소장은 “낙태 후 여성에게 사라지지 않는 트라우마, 죄책감에 대해선 어떻게 답할지도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함수연 낙태반대운동연합 회장도 “낙태 문제에선 태아를 죽이는 길이 아니라 살리는 방향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면서 “의사 등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낙태를 줄이고 생명을 살리는 생명존중법을 국회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선 낙태죄를 그대로 둔 채 임신에 책임이 있는 남성에게 동등한 책임을 지우며 건전한 성윤리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길수 생명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태아를 위험에 빠뜨리는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고 국회는 생명존중법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학교현장에서도 성적 호기심만 자극하는 단순 성교육에서 벗어나 생명의 소중한 가치와 책임감을 알리는 생명보호 교육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혜윤 건강과가정을위한학부모연합 대표도 “낙태 이슈에 있어 남성들이 수동적 입장을 취하는데, 임신의 한 주체인 남성도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면서 “낙태 대신 출산을 선택한 이들에 대해선 국가 차원에서 현실적인 복지정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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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신앙이 없다고? 요새 젊은것들 버릇없다는 고대 이집트 노인들 뒷담화의 현대판이요 기독교 버전의 말이지 싶다. 첫 휴대폰이 일반 폰이었던 대학 1∼2학년생들이 스마트폰으로 시작한 중학생과 세대 차이가 난다고 투덜거리니, 70∼80년대 신앙의 열정을 불태웠던 세대가 보기에 진짜 신앙이 없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애들은 왜 신앙이 없을까’라고 말하는 이들의 자녀는 어떨까. 교회에서는 목사 장로 집사 남·여전도회 회장이고 교회학교 교사이지만, 집에선 어떤지 아이들은 잘 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야장천 읊어대지만, 온몸으로 말한다. 하나님은 없다고. 하나님을 그리 열심히 믿을 필요 없다고. 앉으나 서나 돈 생각, 집 평수 늘리고 자동차 바꾸고 돈 없으면 성공 못 한다고 좋은 대학 가야 인간 대접받는다고 자녀들을 가르치는 한, 시험 기간이라 학원 간다고 예배 빼먹는 것을 허용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한, 단언컨대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신앙이 없다. 그들의 신은 돈이고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대학‘교’이고 사제는 부모일 테니까. 과연 요즘 애들 신앙이 없는 걸까, 아니면 어른들이 신앙을 없게 만든 걸까.

부모 세대와 교회가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질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학생회의 분반 공부 시간을 보면 된다. 채 30분이 안 되는 곳이 많다. 대부분 15분에서 20분이다. 그것도 출석 부르고 간식 주고, 아이스 브레이크 한다고 서로 지낸 이야기 나누면 끝이다. 왜 늦었냐, 왜 공과책 안 갖고 왔냐, 자세가 왜 그 모양이냐, 너희 부모님이 목사 장로 집사인데 그러면 안 되지 등등 태도에 대한 질타가 성경 가르칠 시간을 대체한다.

나의 제안은 분반 시간을 30분 이상 할애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하나는 예배 시간과 공간 활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교회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찬양과 설교 시간을 조금씩 덜면 가능하다. 찬양과 설교시간만큼 성경공부 시간을 확보하라.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아이들이 참여하고 말할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다른 하나는 교사들의 입장인데, 고개 숙이고 휴대폰만 쳐다보는 아이들은 30분이란 긴 시간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 학생회는 교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들만 모여 있다고 한다. 부모 손에 ‘강제징집’된 것이다. 교회 안 가면 용돈 안 준다, 휴대폰 빼앗는다는 협박성 강압 때문에 마지못해 붙잡혀 있다. 부모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해서 다니지 않았을까.

대안은 아이들이 직접 말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아이가 성경을 안 읽어오거나 예습을 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왜 안 했냐고 꾸중할수록 관계만 멀어진다. 차라리 본문을 복사해서 나눠주고 그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서너 번 읽는다. 분반 시간이 모자라면 그렇게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읽은 다음, 둘씩 짝을 지어 줄거리를 요약하도록 한다. 그리고 각자 느낀 점을 말하게 한다.

나는 각자 질문을 한 가지씩 말하게 하고, 그 대답을 교사가 아닌 다른 학생들이 말하게 한다. 책을 여럿 쓴 나도, 성경과 신학을 제법 공부했다고 자부하는 나도 아이들에게 배운다. 살아 있는 주석이다. 아이들의 입에서 주석의 내용이 술술 나온다. 가르치려 들지 말고 배우려는 마음으로, 내가 말하려 들지 말고 아이들이 말하도록 한 발 뒤로 물러나면 기똥차게 말을 잘한다.

마태복음 9장을 묵상하다 엉엉 운 적이 있다. “귀신 들려 말 못 하는 사람”(33절) 때문이었다. 이 귀신은 말을 못 하게 한다. 가만 보니 요즘 청소년들이 저 귀신에 사로잡혀 있다. 집에서는 부모, 학교에서는 교사, 교회에서는 목회자와 교사가 일방적으로 말을 한다. 우리가 말이 많으니 아이들이 안 하는 것이다. 내가 바로 저 귀신이구나, 아이들이 귀신 들려 말 못 하고 있는구나 싶어 미안함에 울었다.

저 옛날 예수 만나서 말 못 하는 사람이 말하게 됐다. 그 이야기가 그때 그곳의 그들의 것에서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가 돼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믿음 없다고 탓하기 전에 ‘아이들을 믿어주지 못하는 우리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할 때다.

김기현 목사 (로고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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