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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그림-영화로 본 게임 미디어의 예술적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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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언주 작성일20-10-26 10:25 조회3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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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가톨릭대 교수윤혜영 가톨릭대 교수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앞선 미디어의 변화는 새로운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 새로운 미디어인 게임 역시 지나간 시대를 풍미했던 그림과 현시대의 총아인 영화라는 시각적 미디어의 변화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그림의 역사에서 미디어의 발전을 추동한 욕망은 인간의 눈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원근법이나 번짐 기법 같은 회화 기법 발전과 바로크 양식, 자연주의, 사실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사조의 변화는 이러한 욕망의 변주이다.

하지만 19세기에 사진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눈처럼 보는 일은 더 이상 그림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대신 그림은 사진은 할 수 없고, 그림만 할 수 있는 기법들을 개발해야 했고 인상파, 입체파, 추상파와 같은 사조의 등장이 그 결과였다.

그림에서 표현 기법의 도약적인 변화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면, 영화에서 표현 기법의 변화는 카메라 기술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 무성영화, 흑백영화 시절에 등장한 표현 기법은 카메라에 의존하는 대신 편집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몽타주’ 기법이었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가 더 깊이, 더 자세하게 피사체를 화면에 담아낼 수 있게 되면서 화면 연출과 촬영에 더 초점을 맞춘 ‘미장센’ 기법이 등장한 것이다.

사진의 등장이 그림의 정체성을 흔드는 변화였다면, 컴퓨터 그래픽(CG)의 발전은 움직이는 사진이라는 영화의 미디어적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 디즈니가 90년대를 풍미했던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실사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라이언킹’은 영화 전체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됐다. 컴퓨터 그래픽도 일종의 그림인데 그렇다면 애니메이션 ‘라이언킹’과 영화 ‘라이언킹’의 차이는 무엇일까.

현대 미술에서 그림의 변화는 그림 미디어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림은 조각과 결합하기도 하고, TV와 결합하기도 하며, 게임과 결합하기도 한다. 또한 현대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은 그림과 영화와 같은 미디어가 변화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변화는 미디어 간의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림이나 영화와는 다르게 컴퓨터를 모태로 하는 게임 미디어에 있어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은 변화의 요구가 아니라 미디어 자체의 본질이다. 지금까지 영화가 종합 예술로 일컬어졌지만, 게임 안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미디어와 문화가 융합된다. 그림, 영상, 문자와 같은 시각 미디어와 소리, 음악과 같은 청각 미디어뿐만 아니라 VR(가상현실) 기술은 촉각과 공감각까지 게임 안으로 끌어들인다. 대중적인 놀이 미디어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경쟁과 전투의 시뮬레이션이 게임의 주가 되기는 했지만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게임 환경 안에서 모든 종류의 문화가 시뮬레이션 될 수 있다.

미술이 게임과 결합한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내놓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최근에 ‘넷플릭스’는 영화와 게임을 결합한 ‘밴더스내치’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미술과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컴퓨터로 집결하는 시대에 게임은 단순히 새로운 미디어가 아니라, 모든 예술 장르의 새로운 표현 기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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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는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쓴 서예작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뜻)’가 걸려 있다. 이병철 회장은 이 글귀를 무척 좋아해, 이 글귀를 쓴 170점 이상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자신의 집무실로 사용한 승지원에 부친이 쓴 이 작품을 걸어 놓고 늘 가까이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삼성 측은 25일 별세한 이건희 회장의 장례에 대해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葬)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조화와 조문은 정중하게 사양한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최고 경영진은 ‘삼성그룹장(葬)’으로 하자고 건의했지만, 가족장으로 하겠다는 유족들의 뜻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유 주식 가치만 18조2000억원으로 부동의 국내 1위이자, 세계 67위 대부호인 이 회장의 마지막 길은 남들처럼 조용하고 소박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 삼성 인사는 “이 회장이 저 글귀에 큰 애정을 가진 것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을 이끌고 있지만 ‘빈손으로 왔다’는 걸 늘 생각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 회장은 마지막 길에도 '공수거’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건희 말말말
이 회장은 삼성서울병원 건립 등을 통해 국내 장례 문화를 개선하는 데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93년 삼성의료원 건립 공사 현장을 찾아 “낙후된 병원이 환자 입장에서 얼마나 큰 고통인지 너무도 잘 알면서 그대로 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의 총수로서 할 일이 못 된다”고 강조했다. 삼성서울병원은 개원 때부터 장례식장을 직영으로 운영해 장례 물품 바가지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입관 업무에 관련된 사람들을 공개하는 ‘입관 실명제’를 도입해 ‘촌지 문화’를 축출했다. 술과 화투가 판치고,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돈이 오가는 폐습을 바꾸는 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희(오른쪽에서 둘째) 삼성 회장이 1993년 삼성의료원 건립 공사 현장을 방문해 현장 담당자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삼성
이날 장례식장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장례식장에) 실내 50인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했다. 오후 7시25분에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노 실장은 10여분간 빈소에 머물며 문재인 대통령의 애도 메시지를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신은진 기자 momof@chosun.com] [한경진 기자 kj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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