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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도신 작성일20-09-26 23:28 조회19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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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졸업식 가진 제주한수풀해녀학교 체험기
지난봄 아내가 갑자기 해녀학교에 다니겠다고 했다. 뭐라고? 해녀가 되겠다고? 귀를 의심했다. 영화 기획자이자, 배우 매니저, 드라마 홍보마케팅 관련 전문가로 평생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왔던 아내가 갑자기 웬 해녀?
아내는 올 4월 제주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 해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전국에서 지원이 몰려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했다는데, 작년에 낙방의 고배를 마신 아내가 올해는 재수를 해서 기어코 들어간 것이다. 합격의 비밀은 자기소개서였다고 한다. “저를 붙여 주신다면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기획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블라블라~.”
12일 열린 한수풀해녀학교 졸업식에서 전통 해녀복장인 물적삼(상의)과 물소중이(하의)를 입은 학생들.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아내는 5월 초부터 주말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 요금은 평균 2만 원가량으로 쌌다. 아내는 처음에는 토요일 새벽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올라왔다. 그러더니 점점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고 내려가서 토, 일요일을 꼬박 바다에서 살았다.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자기 숨만으로 물속 깊이 잠수해서 소라, 전복 등을 따오는 해녀의 험난한 삶을 배우겠다는 21세기의 여성들은 대체 누구일까. 해녀학교는 왜 매년 입학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일까. 지난달 근속휴가를 맞아 일주일간 제주에서 해녀학교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끼고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해녀학교 수업 풍경. 테왁을 잡고 잠수를 하는 해녀학교 학생들.
제주 사람들은 거칠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바당’이라고 한다. 해녀학교 앞에는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는 잔잔한 바당이 있었다. ‘교실’로 불리는 이 바다의 물속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해녀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요원이 지키는 방파제 인근에는 돌돔이 살고,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예쁜 범돔이 헤엄치고, 수천 마리의 에메랄드빛 멜떼(멸칫과 물고기)가 반짝거리며 몰려다녔다. 숨을 참고 4, 5m 물속에 잠수해 보면 갯민숭달팽이, 돌문어, 광어, 숭어들이 손에 잡힐 듯 오갔다.
해녀학교 수중에 있는 해녀상.
토요일 오후. 해녀학교 학생들은 테왁 망사리를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테왁은 해녀들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붙잡고 있는 부력장비로, 밑에 그물이 달려 있어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다. 물질을 가르쳐주는 강사는 귀덕2리 어촌계에 소속해 있는 31명의 60, 70대 해녀 삼촌들. 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많은 분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바다로 나아갔다. 출발하자마자 10m쯤 나갔을까. 한 조에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 나온 해녀 삼촌의 손에 커다란 돌문어가 감겨져 있었다. 해녀 삼촌들은 호맹이(호미)로 바위를 뒤집어 채취하는 법, 물속에 센 조류가 있을 때 바위를 잡고 버티는 법, 뾰족한 가시가 있는 성게를 손으로 잡는 법 등 바다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수해 주었다.
문어잡이 시범을 보이는 해녀 강사. 한수풀해녀학교 제공
현재 4000명가량 남아 있는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60, 70대 고령층이다. 고된 작업 때문에 해녀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한 제주도는 2008년부터 한수풀해녀학교에 예산을 지원해 신입생을 모집했다. 2017년부터는 전문 직업해녀 양성반도 개설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 정식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여 명에 이른다.
12일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13기 졸업식이 열렸다. 4개월간의 고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은 전통 해녀복인 흰색 물적삼(상의)과 검은색 물소중이(하의)를 차려입고 졸업장을 받았다.
제주 한림읍 협재리에서 온 서지원 씨(26)는 해녀의 손녀다. 올해 77세인 할머니는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했던 상군(上軍) 해녀였다고 한다. 비양도는 협재리에서 3km 해상에 있는 화산섬. 주위 바다에는 80여 어종이 서식하고 각종 해조류와 수산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서 씨는 미용사인 이모와 함께 해녀의 대를 잇기 위해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해녀의 매력은 ‘자유롭다’는 점인 것 같아요. 회사 생활과 달리 체력만 되면 나이 들어서도 제한 없이 할 수 있지요.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자유롭죠. 협재해녀회에는 현재 해녀가 15명 정도 계신데, 대부분 연로하셔서 젊은 해녀학교 졸업생을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현직 해녀강사
서 씨처럼 직업반을 졸업하면 각 마을의 어촌계에서 1, 2년간 인턴 해녀로 일할 수 있다. 이후 어촌계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게 되면 수협에서 ‘해녀증(해녀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는다. 연간 의무 조업일수를 채우는 해녀들은 제주도로부터 의료비 혜택, 잠수복 지원 등을 받는다.
제주 해녀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강인한 생활력을 자랑해왔다. 이 때문에 ‘감귤나무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연봉이 억대다’라는 소문이 났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바다에 씨알이 굵은 물건들이 많아서 10~15m 이상 깊은 바다에서 잠수하는 상군 해녀들은 연간 6000만~7000만 원 이상씩 벌었다고 한다”며 “요즘엔 바다에 백화현상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 다른 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백화현상은 산호처럼 생긴 석회질 성분의 홍조류가 퍼져 바다 밑바닥을 하얗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해조류를 먹는 어패류도 사라지고 어장 황폐화 가능성이 커진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한수풀해녀학교의 해녀 강사와 학생들이 8월 15일 수업 중에 태극기를 들고 광복절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제공
제주 사람들이 대부분인 전문해녀 양성 직업반과 달리 입문반의 풍경은 달랐다. 절반은 제주 이외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 아내처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제주에서 집을 빌려 한 달 살기, 석 달 살기 등을 하면서 해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 요리사, 마케팅 전문가, 심리상담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 유튜버 등 해녀와 제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려는 이들도 적잖았다.
해녀는 물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물벗’이라고 부르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즉 2명이 한 조가 돼 서로의 안전을 챙겨줘야 한다. 아내의 물벗은 총각 의사 선생님 이하은 씨(31)였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신입생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직하는 과정에서 4.5개월간 시간이 비어 재충전과 휴식을 하고 싶었다”며 “원래 허리가 좀 아팠는데 여름 내내 바다에서 잠수하고, 채취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한 김연주 씨(36)는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지난해 퇴직 후 태국 발리, 푸껫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태국으로 갈 길이 막히자 제주해녀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제주에 정착해서 언젠가 해녀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며 “그 전까지는 제주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거나 금속공예 전공을 살려 해녀를 소재로 한 콘텐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고두심 씨가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빛나는 순간’ 촬영을 위해 한수풀 해녀학교를 방문한 모습.
김인형 씨(38)는 바다가 좋아서 아예 직장을 제주도에서 구한 경우. 2015년 숙명여대에서 심리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며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피해자 상담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경미한 우울증 같은 게 생기곤 하는데, 생명력 넘치는 해녀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받고 치유가 됐다”며 “수업 중에 해녀 삼촌이 직접 잡은 성게를 까서 입에 넣어주시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윤정 씨(36)도 2018년 퇴사 후 한 달 살이를 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케이스다.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관련 일을 했던 그는 바다수영과 마라톤, 사이클을 겨루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마니아다. 매일 바다수영을 할 수 있고, 총연장 223km인 제주 해안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한라수목원과 올레길에서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제주도는 그에게 환상 그 자체다. 그는 “해녀란 직업은 달리기나 자전거처럼 기계적 장치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숨만으로 잠수하고 채취하는 일이어서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녀학교 입학식
해녀학교에는 남학생 비율도 10%가량 된다. 하지만 해남이 되는 길은 더 어렵다. 마을의 해녀회에서 받아주는 절차가 여성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 남편이 함께 물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2014년 해녀학교를 졸업한 김은주 씨(53)와 남편 김형준 씨(53)는 서귀포시 공천포에서 부부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해남’을 꿈꾸는 황태원 씨(36)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메인주방 셰프 출신이다. 5년 전 제주에 온 그는 한경면 용수리에서 숙박업과 식당을 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해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식당 문도 닫고 물질을 배웠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내년에 직업반까지 마치고 해남이 돼서 아침엔 물질하고 저녁엔 식당을 하는 삶을 꿈꿉니다.”
또 다른 ‘해남’을 꿈꾸는 강혁주 씨(35)는 서울 강남구의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본사를 꾸리고 있는 CEO다. 해녀 학교 생활의 전반에 대해 영상을 찍고 사진을 담아서 졸업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이번 해녀 학교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직접 잡은 해산물로 샤브샤브 매장을 운영하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경우는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를 5~10년씩 하더라도 배타적인 제주의 마을 공동체에 온전히 녹아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해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어촌계에 가입되는 순간 이른바 마을의 ‘인싸’(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 이학출 한수풀해녀학교 교장(귀덕2리 어촌계장)은 “해녀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 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50여 명 정도”라며 “해녀가 되기 위해선 물질 실력보다 우선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푸른 바닷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해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물뽕 맞았다’라고 표현하는 증상이었다. 아내는 선언했다. “나 내년에도 직업반에 또 지원할 거야.”
●서지원(26·제주 해녀의 손녀)
제주 한림읍 협재의 쇼핑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할머니(77)가 협재에서 해녀생활을 하셨다.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하실 정도로 상군(上軍) 해녀였다. 비양도는 물건이 엄청 크고 좋다. 할머니는 딸만 여섯인데 엄마를 비롯해 딸 아무도 해녀를 하지 않았다. 미용실을 하는 이모랑 제가 해녀를 하기 위해 함께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할머니가 계신 협재 어촌계의 추천서를 받아 해녀학교 직업반에 등록할 수 있었다. 협재 해녀회에는 15명의 해녀가 있는데 대부분 연로하신 분들이 많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찾고 있다. 70세 이상이 되신 해녀분들은 물질을 잘 못한다. 이모는 미용실을 하면서 해녀를 겸직하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저는 직업반에서도 제일 나이가 어리다. 그래서 ‘애기’라고 불린다. 어릴 적부터 바다를 좋아했는데, 수영은 못한다. 그러나 수트를 입고, 테왁을 들고 있으면 물에 뜰 수 있다. 예전에는 바다 속에 물건이 많아 해녀도 돈을 잘 벌었다고 한다. 요즘인 바다가 오염돼 물건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물질만으로는 생계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해녀가 좋은 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회사 일은 시간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해녀는 체력만 되면 나이들어서도 할 수 있다. 바다에서도 자유롭고, 땅 위에서도 자유롭다.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어촌계에 가입할 자격이 주어진다. 마을마다 다르지만 그 마을에서 2,3년 이상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가입비로 200~300만원을 내는 마을도 있다. 한달에 평균 16일 이상 조업하면 해녀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양식장에서 해물을 채취하기도 하고, 성게 톳 소라를 손질하는 작업을 돕기도 한다. 지난해 해녀학교 직업반을 졸업한 사람 중에 협재 분들 5명이 있었는데, 모두 협재에서 해녀생활을 하고 있다.
●강혁주 씨(35·프리다이빙 강사·평안도 식당 운영)
20대 청춘에 원양어선에 몸을 맡겨 벌어들인 수익으로 운 좋게 서울 강남역 부근 순대국밥집을 인수 했다. 29살에 순대국밥집 사장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24시간 영업을 매장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5년간 매달렸다. 직영 2호점을 내고 결국 프랜차이즈 본사를 설립해 10여개의 가맹점들과 함께하고 있다. 숨도 안쉬고 일했다.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시간은 수영장 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제주도 친구에게 ‘한수풀 해녀학교’ 입학 공고 소식을 듣게 됐다. 순대국밥집을 인수할때와 같은 촉이 딱 왔다. ‘이것은 내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구나!’ 주저 않고 자기소개서를 써 냈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해녀학교 입문반에 입학했다. 4개월간 사업에, 코로나에, 등교에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그 와중에 영상과 사진은 내 역사에 길이길이 남기기 위해 손에서 카메라와 액션캠을 놓지 않았다. 수영을 하며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었는데 이곳 해녀학교에서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줄 또 누가 알았겠는가? 교장선생님과 사무국장님의 지도 하에 제주도 5미터 다이빙 풀(자이언트다이브)에서 해녀학교 학생들을 트레이닝했고, 해양 실습까지 마치며 자격증 발급까지 완료했다. 지난 4개월 매주말 심호흡을 크게 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맡기는 순간 우주로 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다시 오기 힘든 날들을 뒤로 하고 다시 사업에 매진할 수 있는 힘이 생겨 오늘을 살아간다.
●조윤정 씨(36·게스트하우스 운영)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일을 했다. 마라톤대회, 사이클대회, 지역축제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이었다. 제 자신도 운동을 좋아해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경기대회에 참가해왔다. 2018년에 퇴사하고 제주도에 ‘한달살기’로 놀러왔다가 그냥 눌러 앉았다. 제주 바다에서 수영하고, 올레길에서 마라톤하고, 해변도로에서 사이클을 타다보니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정착을 해버렸다. 서울에 살 때는 강원도까지 고속도로 타고 가려면 최소 2~3시간이 걸리는데, 제주도는 집에서 10분만 나오면 모든 게 가능했다. 바다수영은 이호테우, 삼양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에서 허리에 부이를 묶고 1~2km 정도 한다. 사이클은 제주 해안도로를 한 바퀴 크게 돌면 223km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1100도로에는 꼬박 20km를 오르막으로 오르는 최고의 업힐구간 훈련지다. 마라톤은 예전에 이봉주 선수가 훈련했다고 하는 한라수목원에서 한다. 올레길에서 뛰기도 한다. 제주가 좋아서 계속 살고 싶다. 현재 게스트하우스를 대리운영하고 있다. 제주에는 생각보다 혼자 여행오는 여성들이 많다. 혼자 오는 것도 큰 용기지만, 혼자서 오름을 등반하고 자전거를 타고, 스노쿨링을 하는 것을 무서워하시는 분들이 많다. 스포츠를 즐기는 분들에게 코스를 짜주고,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해녀는 가장 제주도를 상징하는 일이다. 지금 제 나이에는 좀 벅차지만, 나중에라도 해녀를 하고 싶다. 제가 자전거,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오롯이 제 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해녀도 마찬가지다. 오롯이 내 숨만으로 소라, 보말과 같은 물건을 잡는 것이다. 물론 바다가 허락을 해야지 들어갈 수 있다. 자연이랑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이 없는 것 같다. 내 숨만큼 참고, 그만큼의 물건을 갖는 것. 욕심내지 않고, 최소한의 장비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해녀의 삶이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김인형(38·제주 경찰청 심리상담사)
바다에 관심이 많아 제주도에 살고 싶었다. 2015년 숙명여대 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일부러 제주도에 있는 직장을 찾았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채용사이트 가장 위에 제주도 직장이 떠 있었다. 한국 법무보호복지공단에서 보호대상자 심리상담을 하는 일이었고, 이어서 제주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상담을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일도 하고 논문쓰는 연구를 하러간다’는 명분이 있으니까 집에서도 제주도행을 허락했다. 제주 해녀는 제주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닌가. 올 때부터 관심있었다. 그러나 안전에도 직결되는 문제이고, 경외심만 갖고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올해 코로나 때문에 국내외 여행도 자유롭지 않아, 제주에서 해녀학교에 도전했다. 해녀학교 입학해보니 지원자들의 열정에 다시한번 놀랐다. 육지에서 주말마다 내려오고, 공항에서 카풀을 해서 학교까지 오면서 진지하게 수업하는 걸보고 자극을 많이 받았다. 피해자 상담을 하다보면 경미한 수준의 우울증이 생길 수 있는데, 여기서 정말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삶의 에너지를 받고,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다.
●이하은 씨(31·의사)
전공의 수련기간이 끝나고 지난 3월말에 병원을 퇴사하고, 새로운 병원으로 가기로 돼 있었다. 이직기간 중 제주 한달살기를 하며 올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간판을 봤다. 원래 바다에서 수영하고, 서핑하는 것을 좋아했다. 4월말에 해녀학교에 등록하면서 아예 몇 개월간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잠수를 하다보니 몸도 건강해지고 폐활량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숨참기가 1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2분30초가량 숨을 참을 수 있다. 제주에 있으면서 올레길도 거의 다 걸었다. 순수하게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해녀학교 생활은 다시는 얻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 김연주(36)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하고, 쥬얼리와 화장품 업계 마케팅 부서에서 10년 정도 근무했다. 25살부터 34살까지 10년간 트렌드를 쫓아다니는 마케팅 일을 했으니, 35살부터 10년간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퇴직 후 ‘제2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해외도 못가는 상황에서 해녀학교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하면서 제주에서 사는 삶도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부모님과 친구, 직장동료들이 걱정하고 난리였다. 해녀학교에 입학해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자기소개를 듣는 순간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찾아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눈물이 났다. 내가 백조의 세계에 살고 있는 외톨이, 보랏빛 미운 오리새끼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와보니 보라색 미운 오리들 천지였다. 굉장히 동질감을 느끼게 됐고, 빠르게 친해졌다. 능력치나 조건같은 껍데기보다, 내면적으로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해녀학교 생활이 좋았다.
●황태원(36·셰프)
5년 전 제주로 내려와 한경면 용수리 신창해안도로에서 식당과 숙박업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 메인 주방에서 3년간 일했다. 제주도에 5개월간 여행하면서 스노클링하고, 문어도 잡으면서 제주 바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차츰차츰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허름한 바닷가 농가주택을 개조해 해산물을 컨셉으로 요리하는 식당과 숙박업소를 운영했다. 해녀학교는 3년간의 준비 끝에 입학했다. 첫해에는 접수 날짜를 놓쳐서 떨어졌고, 작년에는 지원했는데 불합격했다. 올해에는 삼수 끝에 입학했다. 현직 해녀로부터 물 속에서 현장실습을 하다보니까 해녀만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해남이 되어 식당을 하는 게 꿈이다. 제가 직접 채취한 물건으로 요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시너지를 낳을 수 있다. 내년에 직업반 수업을 듣고, 어촌계에 가입하는 절차를 차근차근 밟으면 해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촌계 해녀회에서 남자도 받아줄까 모르겠지만, 회원 80%의 동의를 받으면 된다고 한다. 답은 없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제가 마을에서 5년간 살았지만, 주변 분들로부터 ‘저 사람이 해녀가 되면 마을발전에 도움을 줄 것 같다’는 평판을 들어야 한다. 제주에서 실제 활동하는 해남은 많진 않다. 현직 해녀에게 들었는데, 남녀는 인체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갈 수록 여자보다 남자가 조금 더 못 버틴다고 한다. 4개월간 해녀학교에 다닐 동안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아예 식당 문을 닫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수업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바닷 속을 배우는 것도 재밌었고 행복했다. 1주일 동안 토요일을 너무나 기다렸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61)
2014년도에 29년간 일했던 공직에서 정년퇴직하고, 2016년에 해녀학교를 졸업했다. 당시에 남자 졸업생이 12명이었다. 남자들도 매년 5~10명씩 해녀학교에 다닌다. 지금까지 남자 졸업생만 100명 가까이 될 것이다. 남자들도 졸업 후 해남(海男)으로 활동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실제로 해녀회 가입에 성공하기란 극히 어렵다. 그러나 마을에 따라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는 해남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해서 퇴직 후에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해녀학교의 세 번째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해녀학교 입학기준은 자기소개서에 나타난 열정을 많이 본다. 입문반의 50%는 제주도 이외의 육지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을 뽑는다. 비싼 비행기값 주고 주말마다 오는 사람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외국인은 정원 외다. 지원하는 사람은 대부분 뽑는다. 필리핀에서 온 사람도 있고, 러시아에서 온 사람도 있다. 진짜 해녀로 활동하려면 직업해녀 양성반을 졸업해야 한다. 직업반 사람들은 어촌계의 추천을 받아서 입학한다.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어촌계에 가입해서 인턴 해녀생활을 거친 후 받아들여지면, 해녀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인턴해녀 생활은 1년에 60일 이상 조업하고, 자신이 잡은 해산물을 수협에 180만원 어치 이상 납품해야 한다. 조업일수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제주시에서 해녀증을 받으면 의료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해녀들은 예전에는 귤나무를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어 애들 학교 보내고,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키고 했다고 한다. 씨알이 굵은 물건도 많아서 상군 해녀들은 약 6000~7000만원 정도 벌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요즘에는 바다가 백화현상 때문에 물건이 많이 줄었다. 요즘도 성게철에는 1인당 600~700만원의 수입을 얻는다. 그러나 연간으로 치면 예전보다 수입이 크게 적은 게 현실이다. 해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쉽지 않다. 해녀를 하고 싶으면 ‘곰처럼 굴지 말고, 여우처럼 굴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가입비를 많이 내고, 물질을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마을에서 공동작업을 해야할 때 무뚝뚝하게 나오라고 해도 안나오고 하면 안된다. 적극적으로 마을일에 참여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뽑게 된다.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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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졸업식 가진 제주한수풀해녀학교 체험기
지난봄 아내가 갑자기 해녀학교에 다니겠다고 했다. 뭐라고? 해녀가 되겠다고? 귀를 의심했다. 영화 기획자이자, 배우 매니저, 드라마 홍보마케팅 관련 전문가로 평생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왔던 아내가 갑자기 웬 해녀?
아내는 올 4월 제주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 해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전국에서 지원이 몰려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했다는데, 작년에 낙방의 고배를 마신 아내가 올해는 재수를 해서 기어코 들어간 것이다. 합격의 비밀은 자기소개서였다고 한다. “저를 붙여 주신다면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기획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블라블라~.”
12일 열린 한수풀해녀학교 졸업식에서 전통 해녀복장인 물적삼(상의)과 물소중이(하의)를 입은 학생들.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아내는 5월 초부터 주말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 요금은 평균 2만 원가량으로 쌌다. 아내는 처음에는 토요일 새벽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올라왔다. 그러더니 점점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고 내려가서 토, 일요일을 꼬박 바다에서 살았다.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자기 숨만으로 물속 깊이 잠수해서 소라, 전복 등을 따오는 해녀의 험난한 삶을 배우겠다는 21세기의 여성들은 대체 누구일까. 해녀학교는 왜 매년 입학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일까. 지난달 근속휴가를 맞아 일주일간 제주에서 해녀학교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끼고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해녀학교 수업 풍경. 테왁을 잡고 잠수를 하는 해녀학교 학생들.
● 해녀학교의 ‘바당’ 교실
제주 사람들은 거칠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바당’이라고 한다. 해녀학교 앞에는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는 잔잔한 바당이 있었다. ‘교실’로 불리는 이 바다의 물속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해녀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요원이 지키는 방파제 인근에는 돌돔이 살고,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예쁜 범돔이 헤엄치고, 수천 마리의 에메랄드빛 멜떼(멸칫과 물고기)가 반짝거리며 몰려다녔다. 숨을 참고 4, 5m 물속에 잠수해 보면 갯민숭달팽이, 돌문어, 광어, 숭어들이 손에 잡힐 듯 오갔다.
해녀학교 수중에 있는 해녀상.
토요일 오후. 해녀학교 학생들은 테왁 망사리를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테왁은 해녀들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붙잡고 있는 부력장비로, 밑에 그물이 달려 있어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다. 물질을 가르쳐주는 강사는 귀덕2리 어촌계에 소속해 있는 31명의 60, 70대 해녀 삼촌들. 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많은 분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바다로 나아갔다. 출발하자마자 10m쯤 나갔을까. 한 조에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 나온 해녀 삼촌의 손에 커다란 돌문어가 감겨져 있었다. 해녀 삼촌들은 호맹이(호미)로 바위를 뒤집어 채취하는 법, 물속에 센 조류가 있을 때 바위를 잡고 버티는 법, 뾰족한 가시가 있는 성게를 손으로 잡는 법 등 바다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수해 주었다.
문어잡이 시범을 보이는 해녀 강사. 한수풀해녀학교 제공
● 해녀가 연봉이 억대라는 소문이?
현재 4000명가량 남아 있는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60, 70대 고령층이다. 고된 작업 때문에 해녀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한 제주도는 2008년부터 한수풀해녀학교에 예산을 지원해 신입생을 모집했다. 2017년부터는 전문 직업해녀 양성반도 개설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 정식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여 명에 이른다.
12일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13기 졸업식이 열렸다. 4개월간의 고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은 전통 해녀복인 흰색 물적삼(상의)과 검은색 물소중이(하의)를 차려입고 졸업장을 받았다.
제주 한림읍 협재리에서 온 서지원 씨(26)는 해녀의 손녀다. 올해 77세인 할머니는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했던 상군(上軍) 해녀였다고 한다. 비양도는 협재리에서 3km 해상에 있는 화산섬. 주위 바다에는 80여 어종이 서식하고 각종 해조류와 수산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서 씨는 미용사인 이모와 함께 해녀의 대를 잇기 위해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해녀의 매력은 ‘자유롭다’는 점인 것 같아요. 회사 생활과 달리 체력만 되면 나이 들어서도 제한 없이 할 수 있지요.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자유롭죠. 협재해녀회에는 현재 해녀가 15명 정도 계신데, 대부분 연로하셔서 젊은 해녀학교 졸업생을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현직 해녀강사
서 씨처럼 직업반을 졸업하면 각 마을의 어촌계에서 1, 2년간 인턴 해녀로 일할 수 있다. 이후 어촌계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게 되면 수협에서 ‘해녀증(해녀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는다. 연간 의무 조업일수를 채우는 해녀들은 제주도로부터 의료비 혜택, 잠수복 지원 등을 받는다.
제주 해녀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강인한 생활력을 자랑해왔다. 이 때문에 ‘감귤나무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연봉이 억대다’라는 소문이 났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바다에 씨알이 굵은 물건들이 많아서 10~15m 이상 깊은 바다에서 잠수하는 상군 해녀들은 연간 6000만~7000만 원 이상씩 벌었다고 한다”며 “요즘엔 바다에 백화현상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 다른 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백화현상은 산호처럼 생긴 석회질 성분의 홍조류가 퍼져 바다 밑바닥을 하얗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해조류를 먹는 어패류도 사라지고 어장 황폐화 가능성이 커진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한수풀해녀학교의 해녀 강사와 학생들이 8월 15일 수업 중에 태극기를 들고 광복절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제공
● 이직(移職)과 코로나… ‘한 달 살기’가 해녀학교 열풍으로
제주 사람들이 대부분인 전문해녀 양성 직업반과 달리 입문반의 풍경은 달랐다. 절반은 제주 이외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 아내처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제주에서 집을 빌려 한 달 살기, 석 달 살기 등을 하면서 해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 요리사, 마케팅 전문가, 심리상담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 유튜버 등 해녀와 제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려는 이들도 적잖았다.
해녀는 물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물벗’이라고 부르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즉 2명이 한 조가 돼 서로의 안전을 챙겨줘야 한다. 아내의 물벗은 총각 의사 선생님 이하은 씨(31)였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신입생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직하는 과정에서 4.5개월간 시간이 비어 재충전과 휴식을 하고 싶었다”며 “원래 허리가 좀 아팠는데 여름 내내 바다에서 잠수하고, 채취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한 김연주 씨(36)는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지난해 퇴직 후 태국 발리, 푸껫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태국으로 갈 길이 막히자 제주해녀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제주에 정착해서 언젠가 해녀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며 “그 전까지는 제주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거나 금속공예 전공을 살려 해녀를 소재로 한 콘텐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고두심 씨가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빛나는 순간’ 촬영을 위해 한수풀 해녀학교를 방문한 모습.
김인형 씨(38)는 바다가 좋아서 아예 직장을 제주도에서 구한 경우. 2015년 숙명여대에서 심리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며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피해자 상담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경미한 우울증 같은 게 생기곤 하는데, 생명력 넘치는 해녀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받고 치유가 됐다”며 “수업 중에 해녀 삼촌이 직접 잡은 성게를 까서 입에 넣어주시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윤정 씨(36)도 2018년 퇴사 후 한 달 살이를 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케이스다.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관련 일을 했던 그는 바다수영과 마라톤, 사이클을 겨루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마니아다. 매일 바다수영을 할 수 있고, 총연장 223km인 제주 해안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한라수목원과 올레길에서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제주도는 그에게 환상 그 자체다. 그는 “해녀란 직업은 달리기나 자전거처럼 기계적 장치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숨만으로 잠수하고 채취하는 일이어서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녀학교 입학식
● 해녀를 꿈꾸는 해남(海男)들
해녀학교에는 남학생 비율도 10%가량 된다. 하지만 해남이 되는 길은 더 어렵다. 마을의 해녀회에서 받아주는 절차가 여성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 남편이 함께 물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2014년 해녀학교를 졸업한 김은주 씨(53)와 남편 김형준 씨(53)는 서귀포시 공천포에서 부부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해남’을 꿈꾸는 황태원 씨(36)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메인주방 셰프 출신이다. 5년 전 제주에 온 그는 한경면 용수리에서 숙박업과 식당을 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해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식당 문도 닫고 물질을 배웠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내년에 직업반까지 마치고 해남이 돼서 아침엔 물질하고 저녁엔 식당을 하는 삶을 꿈꿉니다.”
또 다른 ‘해남’을 꿈꾸는 강혁주 씨(35)는 서울 강남구의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본사를 꾸리고 있는 CEO다. 해녀 학교 생활의 전반에 대해 영상을 찍고 사진을 담아서 졸업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이번 해녀 학교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직접 잡은 해산물로 샤브샤브 매장을 운영하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경우는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를 5~10년씩 하더라도 배타적인 제주의 마을 공동체에 온전히 녹아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해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어촌계에 가입되는 순간 이른바 마을의 ‘인싸’(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 이학출 한수풀해녀학교 교장(귀덕2리 어촌계장)은 “해녀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 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50여 명 정도”라며 “해녀가 되기 위해선 물질 실력보다 우선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푸른 바닷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해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물뽕 맞았다’라고 표현하는 증상이었다. 아내는 선언했다. “나 내년에도 직업반에 또 지원할 거야.”
해녀학교 사람들 이야기
●서지원(26·제주 해녀의 손녀)
제주 한림읍 협재의 쇼핑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할머니(77)가 협재에서 해녀생활을 하셨다.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하실 정도로 상군(上軍) 해녀였다. 비양도는 물건이 엄청 크고 좋다. 할머니는 딸만 여섯인데 엄마를 비롯해 딸 아무도 해녀를 하지 않았다. 미용실을 하는 이모랑 제가 해녀를 하기 위해 함께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할머니가 계신 협재 어촌계의 추천서를 받아 해녀학교 직업반에 등록할 수 있었다. 협재 해녀회에는 15명의 해녀가 있는데 대부분 연로하신 분들이 많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찾고 있다. 70세 이상이 되신 해녀분들은 물질을 잘 못한다. 이모는 미용실을 하면서 해녀를 겸직하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저는 직업반에서도 제일 나이가 어리다. 그래서 ‘애기’라고 불린다. 어릴 적부터 바다를 좋아했는데, 수영은 못한다. 그러나 수트를 입고, 테왁을 들고 있으면 물에 뜰 수 있다. 예전에는 바다 속에 물건이 많아 해녀도 돈을 잘 벌었다고 한다. 요즘인 바다가 오염돼 물건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물질만으로는 생계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해녀가 좋은 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회사 일은 시간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해녀는 체력만 되면 나이들어서도 할 수 있다. 바다에서도 자유롭고, 땅 위에서도 자유롭다.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어촌계에 가입할 자격이 주어진다. 마을마다 다르지만 그 마을에서 2,3년 이상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가입비로 200~300만원을 내는 마을도 있다. 한달에 평균 16일 이상 조업하면 해녀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양식장에서 해물을 채취하기도 하고, 성게 톳 소라를 손질하는 작업을 돕기도 한다. 지난해 해녀학교 직업반을 졸업한 사람 중에 협재 분들 5명이 있었는데, 모두 협재에서 해녀생활을 하고 있다.
●강혁주 씨(35·프리다이빙 강사·평안도 식당 운영)
20대 청춘에 원양어선에 몸을 맡겨 벌어들인 수익으로 운 좋게 서울 강남역 부근 순대국밥집을 인수 했다. 29살에 순대국밥집 사장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24시간 영업을 매장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5년간 매달렸다. 직영 2호점을 내고 결국 프랜차이즈 본사를 설립해 10여개의 가맹점들과 함께하고 있다. 숨도 안쉬고 일했다.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시간은 수영장 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제주도 친구에게 ‘한수풀 해녀학교’ 입학 공고 소식을 듣게 됐다. 순대국밥집을 인수할때와 같은 촉이 딱 왔다. ‘이것은 내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구나!’ 주저 않고 자기소개서를 써 냈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해녀학교 입문반에 입학했다. 4개월간 사업에, 코로나에, 등교에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그 와중에 영상과 사진은 내 역사에 길이길이 남기기 위해 손에서 카메라와 액션캠을 놓지 않았다. 수영을 하며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었는데 이곳 해녀학교에서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줄 또 누가 알았겠는가? 교장선생님과 사무국장님의 지도 하에 제주도 5미터 다이빙 풀(자이언트다이브)에서 해녀학교 학생들을 트레이닝했고, 해양 실습까지 마치며 자격증 발급까지 완료했다. 지난 4개월 매주말 심호흡을 크게 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맡기는 순간 우주로 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다시 오기 힘든 날들을 뒤로 하고 다시 사업에 매진할 수 있는 힘이 생겨 오늘을 살아간다.
●조윤정 씨(36·게스트하우스 운영)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일을 했다. 마라톤대회, 사이클대회, 지역축제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이었다. 제 자신도 운동을 좋아해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경기대회에 참가해왔다. 2018년에 퇴사하고 제주도에 ‘한달살기’로 놀러왔다가 그냥 눌러 앉았다. 제주 바다에서 수영하고, 올레길에서 마라톤하고, 해변도로에서 사이클을 타다보니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정착을 해버렸다. 서울에 살 때는 강원도까지 고속도로 타고 가려면 최소 2~3시간이 걸리는데, 제주도는 집에서 10분만 나오면 모든 게 가능했다. 바다수영은 이호테우, 삼양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에서 허리에 부이를 묶고 1~2km 정도 한다. 사이클은 제주 해안도로를 한 바퀴 크게 돌면 223km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1100도로에는 꼬박 20km를 오르막으로 오르는 최고의 업힐구간 훈련지다. 마라톤은 예전에 이봉주 선수가 훈련했다고 하는 한라수목원에서 한다. 올레길에서 뛰기도 한다. 제주가 좋아서 계속 살고 싶다. 현재 게스트하우스를 대리운영하고 있다. 제주에는 생각보다 혼자 여행오는 여성들이 많다. 혼자 오는 것도 큰 용기지만, 혼자서 오름을 등반하고 자전거를 타고, 스노쿨링을 하는 것을 무서워하시는 분들이 많다. 스포츠를 즐기는 분들에게 코스를 짜주고,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해녀는 가장 제주도를 상징하는 일이다. 지금 제 나이에는 좀 벅차지만, 나중에라도 해녀를 하고 싶다. 제가 자전거,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오롯이 제 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해녀도 마찬가지다. 오롯이 내 숨만으로 소라, 보말과 같은 물건을 잡는 것이다. 물론 바다가 허락을 해야지 들어갈 수 있다. 자연이랑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이 없는 것 같다. 내 숨만큼 참고, 그만큼의 물건을 갖는 것. 욕심내지 않고, 최소한의 장비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해녀의 삶이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김인형(38·제주 경찰청 심리상담사)
바다에 관심이 많아 제주도에 살고 싶었다. 2015년 숙명여대 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일부러 제주도에 있는 직장을 찾았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채용사이트 가장 위에 제주도 직장이 떠 있었다. 한국 법무보호복지공단에서 보호대상자 심리상담을 하는 일이었고, 이어서 제주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상담을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일도 하고 논문쓰는 연구를 하러간다’는 명분이 있으니까 집에서도 제주도행을 허락했다. 제주 해녀는 제주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닌가. 올 때부터 관심있었다. 그러나 안전에도 직결되는 문제이고, 경외심만 갖고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올해 코로나 때문에 국내외 여행도 자유롭지 않아, 제주에서 해녀학교에 도전했다. 해녀학교 입학해보니 지원자들의 열정에 다시한번 놀랐다. 육지에서 주말마다 내려오고, 공항에서 카풀을 해서 학교까지 오면서 진지하게 수업하는 걸보고 자극을 많이 받았다. 피해자 상담을 하다보면 경미한 수준의 우울증이 생길 수 있는데, 여기서 정말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삶의 에너지를 받고,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다.
●이하은 씨(31·의사)
전공의 수련기간이 끝나고 지난 3월말에 병원을 퇴사하고, 새로운 병원으로 가기로 돼 있었다. 이직기간 중 제주 한달살기를 하며 올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간판을 봤다. 원래 바다에서 수영하고, 서핑하는 것을 좋아했다. 4월말에 해녀학교에 등록하면서 아예 몇 개월간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잠수를 하다보니 몸도 건강해지고 폐활량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숨참기가 1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2분30초가량 숨을 참을 수 있다. 제주에 있으면서 올레길도 거의 다 걸었다. 순수하게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해녀학교 생활은 다시는 얻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 김연주(36)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하고, 쥬얼리와 화장품 업계 마케팅 부서에서 10년 정도 근무했다. 25살부터 34살까지 10년간 트렌드를 쫓아다니는 마케팅 일을 했으니, 35살부터 10년간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퇴직 후 ‘제2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해외도 못가는 상황에서 해녀학교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하면서 제주에서 사는 삶도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부모님과 친구, 직장동료들이 걱정하고 난리였다. 해녀학교에 입학해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자기소개를 듣는 순간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찾아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눈물이 났다. 내가 백조의 세계에 살고 있는 외톨이, 보랏빛 미운 오리새끼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와보니 보라색 미운 오리들 천지였다. 굉장히 동질감을 느끼게 됐고, 빠르게 친해졌다. 능력치나 조건같은 껍데기보다, 내면적으로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해녀학교 생활이 좋았다.
●황태원(36·셰프)
5년 전 제주로 내려와 한경면 용수리 신창해안도로에서 식당과 숙박업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 메인 주방에서 3년간 일했다. 제주도에 5개월간 여행하면서 스노클링하고, 문어도 잡으면서 제주 바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차츰차츰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허름한 바닷가 농가주택을 개조해 해산물을 컨셉으로 요리하는 식당과 숙박업소를 운영했다. 해녀학교는 3년간의 준비 끝에 입학했다. 첫해에는 접수 날짜를 놓쳐서 떨어졌고, 작년에는 지원했는데 불합격했다. 올해에는 삼수 끝에 입학했다. 현직 해녀로부터 물 속에서 현장실습을 하다보니까 해녀만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해남이 되어 식당을 하는 게 꿈이다. 제가 직접 채취한 물건으로 요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시너지를 낳을 수 있다. 내년에 직업반 수업을 듣고, 어촌계에 가입하는 절차를 차근차근 밟으면 해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촌계 해녀회에서 남자도 받아줄까 모르겠지만, 회원 80%의 동의를 받으면 된다고 한다. 답은 없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제가 마을에서 5년간 살았지만, 주변 분들로부터 ‘저 사람이 해녀가 되면 마을발전에 도움을 줄 것 같다’는 평판을 들어야 한다. 제주에서 실제 활동하는 해남은 많진 않다. 현직 해녀에게 들었는데, 남녀는 인체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갈 수록 여자보다 남자가 조금 더 못 버틴다고 한다. 4개월간 해녀학교에 다닐 동안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아예 식당 문을 닫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수업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바닷 속을 배우는 것도 재밌었고 행복했다. 1주일 동안 토요일을 너무나 기다렸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61)
2014년도에 29년간 일했던 공직에서 정년퇴직하고, 2016년에 해녀학교를 졸업했다. 당시에 남자 졸업생이 12명이었다. 남자들도 매년 5~10명씩 해녀학교에 다닌다. 지금까지 남자 졸업생만 100명 가까이 될 것이다. 남자들도 졸업 후 해남(海男)으로 활동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실제로 해녀회 가입에 성공하기란 극히 어렵다. 그러나 마을에 따라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는 해남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해서 퇴직 후에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해녀학교의 세 번째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해녀학교 입학기준은 자기소개서에 나타난 열정을 많이 본다. 입문반의 50%는 제주도 이외의 육지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을 뽑는다. 비싼 비행기값 주고 주말마다 오는 사람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외국인은 정원 외다. 지원하는 사람은 대부분 뽑는다. 필리핀에서 온 사람도 있고, 러시아에서 온 사람도 있다. 진짜 해녀로 활동하려면 직업해녀 양성반을 졸업해야 한다. 직업반 사람들은 어촌계의 추천을 받아서 입학한다.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어촌계에 가입해서 인턴 해녀생활을 거친 후 받아들여지면, 해녀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인턴해녀 생활은 1년에 60일 이상 조업하고, 자신이 잡은 해산물을 수협에 180만원 어치 이상 납품해야 한다. 조업일수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제주시에서 해녀증을 받으면 의료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해녀들은 예전에는 귤나무를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어 애들 학교 보내고,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키고 했다고 한다. 씨알이 굵은 물건도 많아서 상군 해녀들은 약 6000~7000만원 정도 벌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요즘에는 바다가 백화현상 때문에 물건이 많이 줄었다. 요즘도 성게철에는 1인당 600~700만원의 수입을 얻는다. 그러나 연간으로 치면 예전보다 수입이 크게 적은 게 현실이다. 해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쉽지 않다. 해녀를 하고 싶으면 ‘곰처럼 굴지 말고, 여우처럼 굴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가입비를 많이 내고, 물질을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마을에서 공동작업을 해야할 때 무뚝뚝하게 나오라고 해도 안나오고 하면 안된다. 적극적으로 마을일에 참여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뽑게 된다.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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