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하지 않으면 히틀러나 추종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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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솔린 작성일20-09-18 23:33 조회2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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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마다 선교를 강조합니다. 자신들의 종교로 오라는, 마치 상품 홍보하듯이. 교회 안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도, 선교를 나갈 때에는 그럴 듯한 모습으로 나갑니다. 마치 가장 복음적인 종교인인 것처럼 꾸미고. 상품광고 이벤트처럼 전락한 선교의 모습입니다.
가톨릭교회 역시 선교에 열성을 다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외국으로 선교를 나가는 사람들은 마치 순교자와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가는 나라가 야만국이란 선입견 아래 가기에, 자못 분위기는 엄숙 경건했지요.
그런데 유럽 선교사들이 간과한 것은 선교의 내용입니다. 서로 간의 문화적 소통과 교류가 전제되지 않은 선교, ‘나의 종교는 우월하고 너희들은 야만인들이다’ 식의 선교가 주류였던 것입니다.
영화 <미션> 포스터
선진국이라는 유럽인들의 우월감은 피비린내나는 자신들의 과거를 감추고 싶은 허위감정인데, 자신들의 열등감을 선교라는 행위로 가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정서적 폭력이자 지배 욕구를 바탕에 둔, 하느님의 이름으로 반복음적인 행위를 자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교의 목적과 복음의 목적은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이 보내진 선교현장은 참혹합니다. 유럽의 피비린내 나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전쟁은 차치하고라도 제가 남미에서 본,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해 자행된 범죄의 현장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마녀사냥은 유럽에서만 광기를 부린 것이 아니라, 거의 남미 전역에서 벌어졌습니다. 순박한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해 수도원 안에 만들어진 교수대와 단두대를 보면서 경악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원주민들이 가톨릭 수도자들에 의해 유럽에서처럼 처형당한 현장은 오로지 가톨릭 교회만이 진리이고 구원의 교회라는 자만심을 가진 무식하고 광적인 수도자들에 의해 자행된 남미판 킬링필드였고, 그들은 교회 안의 악마들이었습니다.
그런 가톨릭 선교사들의 광기를 필사적으로 막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회 신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원주민들을 지키려 했습니다. 유럽의 군대로부터만이 아니라, 신앙의 광기에 미친 가톨릭 선교 수도자들로부터 원주민들의 생명을 구하려 필사적인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영화 <미션>은 단지 어느 한 군데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남미 거의 전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일부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자부심은 좋지만 자신들만이 가장 우월한 집단이라 여길 때 히틀러의 망령은 어김없이 살아납니다. 그곳이 교회이건 어디이건 간에.
원주민 학살 모습을 담은 사실화
종교인들이 신앙뿐만 아니라 폭넓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슬람의 마호메트(무함마드)는 무식한 신자들에게 여행을 권했습니다. 세상을 경험하라고. 그래서인지 정통 이슬람들은 관대합니다. 그 이슬람 술탄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 가톨릭과 개신교는 같은 주님을 믿으면서 싸우느냐고”. 그리스도교의 분열적 성향, 소인배적 성향을 꼬집은 것입니다. 그런 이슬람을 개종시키겠다는 선교사들.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입니다. 종교와 종교. 민족과 민족은 존중심으로 만나야지, 우월감으로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대하면 반드시 피비린내나는 킬링필드가 재현됩니다.
히틀러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과거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거듭나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게도 가톨릭의 부끄러운 역사를 비판하며 독립한 개신교- 특히 한국개신교계가 가톨릭의 이 부끄러운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신원 검증이나 제대로 된 교육 없이 목사직이 남발되고, 그런 목사들이 설교대에서 말도 안되는 선동질을 합니다. 자신이 히틀러이면서, 다른사람을 히틀러라고 몰아붙이는 모자란 이까지.
학문이건 종교이건 끊임없이 공부하고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기는커녕, 자신이 선지자인 양 하는 자들은 히틀러의 자식들입니다.
종교마다 선교를 강조합니다. 자신들의 종교로 오라는, 마치 상품 홍보하듯이. 교회 안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도, 선교를 나갈 때에는 그럴 듯한 모습으로 나갑니다. 마치 가장 복음적인 종교인인 것처럼 꾸미고. 상품광고 이벤트처럼 전락한 선교의 모습입니다.
가톨릭교회 역시 선교에 열성을 다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외국으로 선교를 나가는 사람들은 마치 순교자와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가는 나라가 야만국이란 선입견 아래 가기에, 자못 분위기는 엄숙 경건했지요.
그런데 유럽 선교사들이 간과한 것은 선교의 내용입니다. 서로 간의 문화적 소통과 교류가 전제되지 않은 선교, ‘나의 종교는 우월하고 너희들은 야만인들이다’ 식의 선교가 주류였던 것입니다.
영화 <미션> 포스터
선진국이라는 유럽인들의 우월감은 피비린내나는 자신들의 과거를 감추고 싶은 허위감정인데, 자신들의 열등감을 선교라는 행위로 가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정서적 폭력이자 지배 욕구를 바탕에 둔, 하느님의 이름으로 반복음적인 행위를 자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교의 목적과 복음의 목적은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이 보내진 선교현장은 참혹합니다. 유럽의 피비린내 나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전쟁은 차치하고라도 제가 남미에서 본,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해 자행된 범죄의 현장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마녀사냥은 유럽에서만 광기를 부린 것이 아니라, 거의 남미 전역에서 벌어졌습니다. 순박한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해 수도원 안에 만들어진 교수대와 단두대를 보면서 경악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원주민들이 가톨릭 수도자들에 의해 유럽에서처럼 처형당한 현장은 오로지 가톨릭 교회만이 진리이고 구원의 교회라는 자만심을 가진 무식하고 광적인 수도자들에 의해 자행된 남미판 킬링필드였고, 그들은 교회 안의 악마들이었습니다.
그런 가톨릭 선교사들의 광기를 필사적으로 막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회 신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원주민들을 지키려 했습니다. 유럽의 군대로부터만이 아니라, 신앙의 광기에 미친 가톨릭 선교 수도자들로부터 원주민들의 생명을 구하려 필사적인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영화 <미션>은 단지 어느 한 군데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남미 거의 전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일부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자부심은 좋지만 자신들만이 가장 우월한 집단이라 여길 때 히틀러의 망령은 어김없이 살아납니다. 그곳이 교회이건 어디이건 간에.
원주민 학살 모습을 담은 사실화
종교인들이 신앙뿐만 아니라 폭넓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슬람의 마호메트(무함마드)는 무식한 신자들에게 여행을 권했습니다. 세상을 경험하라고. 그래서인지 정통 이슬람들은 관대합니다. 그 이슬람 술탄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 가톨릭과 개신교는 같은 주님을 믿으면서 싸우느냐고”. 그리스도교의 분열적 성향, 소인배적 성향을 꼬집은 것입니다. 그런 이슬람을 개종시키겠다는 선교사들.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입니다. 종교와 종교. 민족과 민족은 존중심으로 만나야지, 우월감으로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대하면 반드시 피비린내나는 킬링필드가 재현됩니다.
히틀러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과거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거듭나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게도 가톨릭의 부끄러운 역사를 비판하며 독립한 개신교- 특히 한국개신교계가 가톨릭의 이 부끄러운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신원 검증이나 제대로 된 교육 없이 목사직이 남발되고, 그런 목사들이 설교대에서 말도 안되는 선동질을 합니다. 자신이 히틀러이면서, 다른사람을 히틀러라고 몰아붙이는 모자란 이까지.
학문이건 종교이건 끊임없이 공부하고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기는커녕, 자신이 선지자인 양 하는 자들은 히틀러의 자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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