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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피플] 찐빵 나누다 장애인·노숙인·지역아동까지 돕는 곽광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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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보나 작성일20-02-10 18:51 조회1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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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전한 ‘사랑의 찐빵’… 낮은 곳에 따뜻한 잔치가 열린다곽광희 양주 효촌교회 목사가 지난 5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사랑의 찐빵’ 사역과 자신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제 삶의 온기(溫氣)이고 감사지요. 이 작은 덩어릴 들고 수없이 많은 곳을 뛰어 다녔네요. 그 걸음마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잔치가 열렸어요.”

잠시 숨을 고른 곽광희(75) 경기도 양주 효촌교회 목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전하는 이와 받는 이가 느꼈을 사람 냄새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두 시간쯤 나눈 대화의 끝자락에서 툭하고 던진 ‘인간 곽광희에게 찐빵이란’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의 이름 앞엔 23년간 ‘찐빵’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달라진 건 세월이 흘러 흰머리가 늘면서 ‘찐빵 아줌마’가 ‘찐빵 할머니’로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곽 목사는 두 달 전 열린 닮복지재단(이사장 손종주) 이사회에서 이사장 자리를 내려놨다.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인생 1막을 뒤로하고 목회자로서의 인생 2막을 열었던 그에게 사역의 가장 중요한 울타리가 돼줬던 기관이었다. 그는 “사업가로 살던 인생에서 하나님이 ‘성공’을 빼앗아 가지 않으셨다면 2막은 꿈도 못 꿨을 것”이라 했다. 축적에서 나눔으로의 반전을 위해 예비된 아이러니였다.

“1970년대 서울 한복판에 빌딩 한 채를 통으로 샀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 많던 돈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데 1년이 채 안 걸렸어요. 돈을 잡으러 뛰어다닐수록 넘어지기만 하더군요. 결국 동전 한 닢 남지 않은 제 모습이 허탈해 까무러쳤죠.”

사경을 헤매던 그를 일으킨 건 언니의 기도였다. 언니는 병상에 누운 동생을 매일 찾아왔다. 저녁 무렵 시작된 기도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곽 목사는 “불쌍한 영혼 살려달라고 울며불며 기도하는 언니가 안쓰러워 같이 예배를 드리러 간 게 전환점이었다”고 회상했다. 언니의 기도는 고스란히 곽 목사의 서원으로 이어졌다. 사업은 조금씩 정상궤도를 찾았고 회복한 수익은 교도소 재소자 등 소외된 이웃에게 흘러갔다.

그렇게 10년여가 지났을 무렵 그는 이웃을 돕는 사업가가 아닌 섬김을 위한 사명자로의 결단을 내렸다. 나이 50에 목사 안수를 받고 97년 양주에 효촌교회를 개척했다. 자신이 운영하던 공장 부지에 신학교를 세우고 신학생들과 가난한 이들의 끼니를 챙겨 줄 라면가게를 구상했다. 곽 목사는 “60년 된 찐빵 기술을 배운 한 신학생의 제안 덕분에 ‘라면 할머니’가 될 뻔했던 삶이 ‘찐빵 할머니’가 됐다”며 웃었다.

서울역 앞 노숙인들이 지난해 4월 ‘사랑의 찐빵 나눔’ 현장에서 줄을 서 있다. 아래쪽 사진은 곽 목사가 지난해 12월 서울 강북구 닮복지재단 내 찐빵 작업장에서 스태프들과 함께 찐빵을 만드는 모습. 닮복지재단 제공
공장 옆 주차장을 개조한 찐빵 작업장에선 연일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만든 찐빵은 매주 두 차례 서울역, 동대문, 탑골공원, 종묘공원 인근 노숙인과 어르신들의 손에 들려졌다.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하루의 시작이 새벽 2시로 당겨졌어요. 반죽부터 제대로 준비해야 하니까요. 작은 찐빵 하나도 3번 숙성을 거쳐야 진짜배기가 됩니다. 새벽기도회 드리는 동안 찐빵이 잘 부풀어 오르면 그제야 사랑을 전할 채비를 마치는 거죠. 주기도문이 적힌 번호표를 받고 찐빵 대기줄에 서 있던 노숙인들이 어느 순간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모습을 보면 피로가 싹 가시지요.”

목회자가 되고 보니 주머니를 털어야 할 이웃들이 더 많이 보였다. 가출 청소년, 국군 장병, 저소득 장애인에게까지 찐빵이 전달됐다. 매년 가을, 어르신 5000여명을 초청해 종묘공원에서 잔치를 하는 날엔 하루 1만6000개의 찐빵을 만들었다. 찐빵이 향하는 곳이 늘어날수록 두 손은 바빠졌다. 기자의 요청에 곽 목사는 선뜻 자기 손을 내줬다. 수천만 번 밀가루를 치대고 눌렀을 손바닥은 손금 곳곳에 연노란 반죽물이 배어있었다.

찐빵이 부풀어 오르듯 사역도 확장됐다. 2010년엔 사재 25억원을 출연해 ‘닮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찐빵 나누던 손으로 장애인 자립시설, 노숙인 상담센터, 지역아동센터, 데이케어센터 등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손을 잡아줬다. 올해부턴 25개 구청과 협력해 홀몸노인, 차상위계층 등 500가정에 매월 1만개의 찐빵을 전달한다.

곽 목사는 6년째 폐암으로 투병 중이지만 남을 돌보느라 투병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오히려 찐빵 할머니로서 인생 3막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곽 목사는 ‘북한 주민을 위한 찐빵 공장’ ‘가출청소년 자립을 위한 국수 카페’ 등 구상 중인 활동을 소개하며 연신 푸근한 미소를 띄워 보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찐빵들이 많을 거예요. 분명한 건 저 같은 할머니 말고도 더 뜨끈뜨끈한 맘씨를 가진 ‘찐빵 언니 오빠’ ‘찐빵 이모 삼촌’들이 많을 거란 겁니다. 그분들이 우리 사회를 온기로 채워줄 겁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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