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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연수 (13) 남편의 ‘대책없음’은 하나님의 ‘대책’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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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보나 작성일20-05-21 04:01 조회1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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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부양 않고 빈민선교 고집하는 남편, 직장까지 정리하며 무언의 경고 했지만 단독목회의 길김연수 사모의 남편 최일도 목사가 개척한 다일공동체교회 초기 모습. 최 목사는 1989년 서울 청량리 뒷골목, 588홍등가 주변 폐업한 인쇄소 사무실을 빌려 교회를 세웠다.
예수원에서 돌아온 후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 그런데 남편이 가끔 어디로 사라지고 밖에서 돈을 쓰고 오는 일은 그치지 않았다. 나는 벼르고 벼르다 어느 날 남편을 따라나섰다.

그는 날 청량리의 한 설렁탕집으로 데려갔다. 거기엔 집 없는 노인들 몇 분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앉아 있었다. 남편은 익숙한 듯 곧바로 계산대로 가 그들의 밥값을 계산했다. 이어 그들과 몇 마디 나누더니 다시 가게를 나왔다. “여보 봤지? 요즘 내가 밖에서 하는 일이야. 궁금히 여기는 돈도 이렇게 썼고.”

여우를 피해 범을 만난다더니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설마 계속할 건 아니죠.” 집에 도착하자마자 매몰차게 말했다. 남편은 “뭐, 봐가면서…”라며 얼버무렸다. 속이 탔다. 나는 그날부터 남편을 ‘대책 없음’이라 불렀다. 돌이켜보면 남편의 대책 없음은 하나님의 대책(大策)이었다. 그러나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직장을 정리했다. 가족들 생계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남편이 그 일을 그만둘 거로 생각했다. 퇴직금과 그동안 모은 돈으로 조그만 차를 한 대 샀다. 곧 졸업하는 남편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앞으로 집안 살림 이끌어 가려면 바쁠 테니까 신발 바꿔 신고 열심히 뛰어 달라는 일종의 주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빈민선교는 이제 끝내야 한다는 단호한 경고의 의미이기도 했다.

난 남편이 신학교만 졸업하면 큰 교회 전임전도사로 부임해 가계를 책임져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남편은 졸업 후 어떤 교회로도 부임하지 않았다. 이렇다 할 생계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통장 잔고가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7살, 5살 두 아이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하는 수 없이 전에 하던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다. 기독교서회에서 리메이크하는 책들을 받아다 원고를 다시 쓰기도 하고, 번역 원고들의 윤문 및 문법 교정을 시작했다. 원고 한 장당 500원짜리였다. 나는 매일 원고를 썼다. 살림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하루 150장까지 쓸 때도 있었다. 이렇게 몇 달을 살자 오른손 엄지손가락 인대가 늘어났다. 그래도 책 한 권을 마치면 30만~40만원 정도 수입이 들어왔다.

손에 붕대를 감고 원고를 쓰는 내 모습을 본 남편은 마지못해 집 근처 교회에 전임전도사로 들어갔다. 그러나 불과 3달을 못 넘기고 그만뒀다. 얼마 뒤 다일공동체교회를 개척했다. 1989년 9월 10일 다일공동체와 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다. 남편의 대책 없는 행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이 신학생이었던 시절, 나는 힘들 때마다 남편이 목사가 돼 교회에 부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힘을 내곤 했다. 그만큼 손꼽아 기다려온 날이었지만, 도무지 즐겁지가 않았다. 남편은 내 기대와 달리 청량리 뒷골목, 그것도 588 홍등가 주변 폐업한 인쇄소 사무실을 빌려 단독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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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는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목양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N포세대였다”며 “환경과 여건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것이 인생의 해답”이라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만난 사람=이명희 종교국 부국장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믿음이 약한 인간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한국교회는 사상 처음으로 교회 문을 닫아야 하는 참담함을 맛봤다. 주의 종은 이러한 질문에 어떤 답을 할지 궁금했다. 지난 12일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이자 어머니교회라 불리는 새문안교회의 이상학(56) 목사를 찾은 이유다. 그는 국민일보 연중기획 청년응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7월 2일 새문안교회에서 열리는 ‘갓플렉스(God Flex) 오픈 크리스천리더스포럼’에서 말씀을 전한다.

-코로나 같은 재앙이 왜 오는가.

“재앙신학이라고 하는데 구약성경에서는 재앙이 하나님 백성을 깨우치고 훈련하는 하나님의 주된 방법으로 봤다. 신약시대에 오면서 하나님이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시는데 왜 재앙을 내리는가라는 교리상 의문이 생겼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유럽에 200년 가까이 흑사병이 돌면서 유럽 인구의 5분의 1, 많게는 4분의 1이 죽었다 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재앙과 벌을 내리셨으니 앉아서 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루터는 전염병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이 아니라 마귀가 역사하는 것이기에 물리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봤다. 저도 재앙이나 전염병은 하나님이 허락해서 일어나지만, 벌을 내리거나 징계하는 뜻이 아니라 그런 것까지 사용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뤄가신다고 믿는다.”

-팀 켈러 목사 같은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9·11테러나 코로나 같은 재앙을 통해 세상을 네가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내가 컨트롤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믿음의 씨앗을 갖고 있는 분들은 그렇게 받아들인다. 과학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미세 바이러스 하나에 얼마나 취약한지, 인간이 얼마나 유한한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신앙과 불신앙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이전에는 인간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깨닫게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이 많았는데 점점 수가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교회들이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방역에도 잘 협조했다. 새문안교회는 영락교회 소망교회 온누리교회 등과 함께 5억5000만원을 쾌척했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도울 길을 찾고 있던 차에 예장통합 교단의 초대형 교회들이 먼저 제안해 주셔서 동참하게 됐다. 그 교회들이 귀하다.”

-코로나 이후 예배 모습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하나님이 전염병을 허락하신 데는 뜻이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한다는데 주님 보실 때는 좋아보이지 않으셨다고 본다. 이제 사람들로부터 떼어내 하나님 자신께 가까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으셨다. 군중에 묻혀서 신앙생활했던 분들은 이번에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코로나가 터지고 나니 지상 13층 규모의 새문안교회 건물이 아무 소용이 없더라. 이번 사태를 통해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목회자인 저나 성도들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교회의 본질은 결국 삼위 하나님 자신이고 설교자를 통해 전달해 주시는 말씀, 하나님이 우리 삶에 치고 들어오시는 예배 현장, 예배의 순간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코로나 이후 교회는 교회의 본질, 교회됨을 신실하게 추구해 나가야 한다.”

-지난해 말 예장통합 5개 교회가 ‘교회를 교회 되게’ 하겠다는 결의를 하면서 청년세대 지원도 약속했다. 일부 젊은이들은 신천지 같은 이단에 빠져 있는데 교회가 할 일은.

“20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신천지에 빠져 있다는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의 정통 교회들이 깊이 반성할 부분이다. 신천지 가기 전에 청년들이 신앙과 영원한 것에 관심을 갖고 분명 교회에 왔을 텐데 꿈과 비전을 주지 못하고 빈 가슴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서 이단에 자기 영혼을 빼앗긴 것 아닌가 생각한다.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설교를 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N포세대였다. 태어나자마자 나일강에 버려진 모세가 그랬고, 형들에게 배신당해서 하루 아침에 노예가 돼 팔려간 요셉도 그랬다. 기독교 신앙이 가장 위대한 것은 환경과 여건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인생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 정점에 예수님이 계신다. 예수님은 전형적인 소위 ‘흙수저’셨다. 제사장 가문도 아니고 예루살렘 출신도 아니고 시골의 이름 없는 목수의 아들이었다. 그 흙수저가 인류의 구원자가 됐으니 N포세대의 대반전 역사를 이룬 것이다. N포세대를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오는 것이 인생의 해답이고 민족의 해답이다.”

-연세대 건축학과를 나와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이유가 궁금하다.

“저희 집안은 유교 집안이었다. 대학 갈 때는 목사가 된다는 것을 꿈도 꾸지 않았다. 건축학과에 갈 때는 건축가가 멋있어 보였다. 적성은 문과적 기질이 강했다. 20대 중반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예수님을 알게 됐다. 20대 후반에 작은 형님을 여의었는데 고통이 컸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원래 하고 싶었던 사회학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대 대학원에 갔다. 신앙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였는데 합격시켜 주면 주님께 인생을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원래는 30대 후반에 사회생활 실컷 해보고 서원에 응하려 했는데 대학원 졸업할 무렵 자꾸 서원을 생각하게 되고 부르심의 때가 지금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간 소명을 확인하는 기도의 과정을 거치고 신학을 하게 됐다.”

-20대는 어땠는지.

“대학 들어가서 삶에 대해 생각하며 많이 방황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여기저기 부딪혀보고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다 예수님 안에서 해답을 얻었다. 당시 김진홍 목사님이 쓴 ‘새벽을 깨우리로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신앙과 당시의 내 사고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 그게 신앙의 출발이었다. 본격적으로 예수를 알아가기 시작하는 몽학선생 역할을 해주었다고 본다.”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꼈을 때는.

“몇 번 있다. 먼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을 때, 두 번째는 사역지를 정할 때였다. 첫 사역지가 김진홍 목사님이 사역하시던 활빈교회 두레마을이었다. 기도하는 가운데 꿈에 강력하게 인도하셨다. 셋째 미국에서 목회하다 깨졌을 때다. 목회자로서 하나님을 다시 만났을 때 하나님만을 신실하게 추구하며 하나님 자신을 설교하는 법을 그때 배웠다. 넷째 새문안교회에 부임한 뒤 대수술을 했을 때다. 폐와 심장 사이의 물혹을 제거하는 간단한 시술을 하러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튜브를 빼면서 혈관을 치는 바람에 응급상황이 벌어졌다. 그 이후 목회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나님이 자유하신 분임을 받아들이게 됐다. 특이한 종류의 은혜다. 하나님은 보내신 종을 통해 복을 내리실 뿐만 아니라 종 자신도 가다듬어가시는 것 같다.”



이명희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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