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빠진 반쪽 행사 [오래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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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세송 작성일20-05-18 00:44 조회2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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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소복 차림의 유가족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10년 전 광주 5·18 기념식에서 불리지 못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입니다. 지금은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에서 불리고 있지만 한때는 광주 5·18 기념식 때 제창이 금지돼 몸살을 앓았습니다.
2010년 5월18일 경향신문은 1면을 통해 5·18 광주항쟁 30년을 맞아 전야제가 열린 광주 금남로 현장 풍경을 전했습니다. 전국에서 몰려온 추모객 6000여명과 광주 시민 3000여명이 밤까지 함께 비를 맞으며 ‘5월의 그날’을 기억했지만 행사는 반쪽짜리로 끝났는데요.
5·18 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기념식에서 추모곡으로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이명박 정부가 2년째 제외한 데 항의해 불참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결국 인근 묘역에서 별도로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5·18단체들은 막판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의 본행사 편입을 주장했으나, 정부는 끝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경향신문은 보도했습니다.
2010년 5월18일 경향신문은 1면을 통해 5·18 광주항쟁 30년을 맞아 전야제가 열린 광주 금남로 현장을 보도했다. 경향신문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윤상원씨와 그와 함께 노동운동을 하다 사망한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 때 만들어진 민중가요입니다. 그 후 자연스럽게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 됐고, 각종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불려졌습니다. 2004년 광주 5·18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연주된 후 매해 기념식때마다 제창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별도로 기념곡을 만들겠다며 사실상 제창을 금지했고, 숱한 논란 끝에 9년이 지난 2017년 부터 다시 제창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임을 위한 행진곡’은 평화·연대·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아시아인들이 함께 부르는 상징곡이 됐습니다.
노래가 국경을 넘어 아시아 전역을 물들고 있지만, 5·18 가족과 광주 시민들은 그날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지금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이 40년이 지나도록 진상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임자들은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일부 세력은 폄훼와 왜곡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왜곡과 폄훼를 막기 위해 ‘5·18 역사 왜곡 처벌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이 또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 장도리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소복 차림의 유가족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10년 전 광주 5·18 기념식에서 불리지 못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입니다. 지금은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에서 불리고 있지만 한때는 광주 5·18 기념식 때 제창이 금지돼 몸살을 앓았습니다.
2010년 5월18일 경향신문은 1면을 통해 5·18 광주항쟁 30년을 맞아 전야제가 열린 광주 금남로 현장 풍경을 전했습니다. 전국에서 몰려온 추모객 6000여명과 광주 시민 3000여명이 밤까지 함께 비를 맞으며 ‘5월의 그날’을 기억했지만 행사는 반쪽짜리로 끝났는데요.
5·18 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기념식에서 추모곡으로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이명박 정부가 2년째 제외한 데 항의해 불참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결국 인근 묘역에서 별도로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5·18단체들은 막판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의 본행사 편입을 주장했으나, 정부는 끝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경향신문은 보도했습니다.
2010년 5월18일 경향신문은 1면을 통해 5·18 광주항쟁 30년을 맞아 전야제가 열린 광주 금남로 현장을 보도했다. 경향신문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윤상원씨와 그와 함께 노동운동을 하다 사망한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 때 만들어진 민중가요입니다. 그 후 자연스럽게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 됐고, 각종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불려졌습니다. 2004년 광주 5·18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연주된 후 매해 기념식때마다 제창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별도로 기념곡을 만들겠다며 사실상 제창을 금지했고, 숱한 논란 끝에 9년이 지난 2017년 부터 다시 제창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임을 위한 행진곡’은 평화·연대·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아시아인들이 함께 부르는 상징곡이 됐습니다.
노래가 국경을 넘어 아시아 전역을 물들고 있지만, 5·18 가족과 광주 시민들은 그날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지금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이 40년이 지나도록 진상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임자들은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일부 세력은 폄훼와 왜곡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왜곡과 폄훼를 막기 위해 ‘5·18 역사 왜곡 처벌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이 또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 장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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