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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타뉴스][오래 전 ‘이날’] 방폐장 위장 추진에 개발 소외 겹쳐 ‘핵폭발’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30년 전인 1990년 11월 9일 경향신문에는 1면과 12, 13, 14, 15면에 걸쳐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벌어진 ‘핵폐기물 처리장 반대 시위’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가운데 ‘위장 추진에 개발 소외 겹쳐 핵폭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옮겨보겠습니다.

안면읍 중·고교생들이 1990년 11월 8일 등교를 거부한채 읍내시장터에 모여『핵폐기물처리장설치 결사반대』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용하던 갯마을에 난데없는 핵바람이 일어 평화롭던 마을 안면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발단은 지난 3일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핵폐기물처리장을 시설한다”는 과기처 발표에서 비롯됐다. 과기처는 “이미 충남도와 협의를 거쳐 91년부터 본격적으로 안면도에 핵폐기물처리사업을 담당할 제2원자력연구소(일명 서해연구단지)를 설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곳은 78년 10월부터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데다 충남도가 3년 전부터 “1800억원을 들여 국제관광휴양지로 건설”을 약속해 왔기 때문에 더욱 배신감을 느낀 안면도 주민들이 “기만행정에 우롱당했다”며 즉각적인 반발이 시작됐던 것.

충남도는 안면읍 승언리일명「꽃지해변」에「제2의하와이」건설계획을 추진하면서 주민들 가슴에 부푼 기대를 심어왔던 게 사실이다. 안면도 주민들의 폭발적인 분노도 결국은「제2하와이 건설 계획」에 속아온 상대적 배신감에 대한 충격에서 증폭된 것이라는 게 안면도 마을지도자들의 주장이다.

안면읍 및 교남면 등 안면도 내 2개읍·면 사회단체장들과 주민 대표 150여명은 핵폐기장 설치 발표 다음날인 지난 4일 즉각 모임을 갖고 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또 다음날엔“당국의 기만행정에 협조할수 없다”며 2개읍·면 42개리 이장단 및 새마을지도자들이 집단 사표를 냈고 11개초·중·고생 3454명 학생들이 일제히 등교거부에 들어갔다.

“사실무근·언론에서 작문보도” 등 언론까지 매도하면서 부인하기에 안간힘을 쏟았던 심대평 충남지사의 발표가 있은 거의 같은 시간에「계속강행」을 고집하는 과기처 발표가 엇갈리면서 5000여명 안면도 주민들은「백지화」를 요구하는 첫 시위를 시작했다.

심대평 지사도 7일에서야 “지난 9월부터 과기처와 협의한 게 사실”이라고 시인한 뒤 찾아온 주민대표들에게 “지사로서는 반드시 해야할 사업이나 주민들이 원치 않는다면 원할 때까지 추진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보류 약속은 언젠가 또 다시 하겠다는 저의가 아니냐”며 “안면도 핵폐기물연구시설계획 일체를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며 반대운동이 더욱 확산·격화됐다. 주민들의 이같은 예리한 반응은 인근 서산A,B지구나 대산공단, 안면도한국유리정사소 건설 등에서 모은 체험에서 비롯됐다. 현지 주민들에게 이같은 실질적인 혜책보다는 공해와 생태계 파괴, 이로 인한 어장 황폐화 등으로 피해를 본 지난 체험들을 연상시켜 오히려 “개발은 하지 않아도 좋다”는 강경 입장을 갖게 됐다. 그 예로 도에서 1737억원을 들여 추진 중인 국제관광지 조성계획도 핵폐기물 설치와 무관하지 않다며 이 계획의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지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의 건설계획을 밝혀 신뢰감을 주어야 장기화할 수 있는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겠다.

안면도 주민·학생등 5000여명이 1990년 11월 7일 오후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와 관련，모임을 갖고 처리장 설치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30년 전 안면도에서는 초·중·고생까지 포함된 주민 다수가 핵폐기물처리시설 설치에 반대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전신인 과학기술처가 주민들과는 아무런 협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핵폐기물처리시설, 즉 방사성폐기물처리시설의 설치를 예고한 탓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해 철야 농성을 이어갔고, 바리케이트를 친 채 경찰과 대치했습니다. 일부 주민들이 안면도 경찰 지서에 화염병을 던져 지서 건물이 전소되었고, 분노한 주민들에게 경찰관들이 각목으로 구타를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당시 주민들이 벌였던 시위 상황에 대한 기사도 일부를 옮겨봅니다.

안면도 핵폐기물 처리시설반대를 위한 시위를 진압하기위해 출동한 경찰이 1990년 11월 9일 오후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치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안면도 핵폐기물처리시설 반대투쟁위원회 소속 주민 등 1000여명은 8일밤 철야농성한데 이어 9일 상오 1시 승언리 버스터미널 광장에 5000여명의 주민이 또 다시 집결, 5일째 항의시위를 계속했다. 이에 앞서 안면도 내 초·중·고생 3000여명은 8일 하오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산발시위를 벌였으며 태안읍과 서산 등지에서도 이날 하루 동안 태안고·서산고등 10여개 고교생 3000여명을 포함한 주민 8000여명이 핵폐기처리장 설치 반대집회를 가진 뒤 가두행진을 벌였다. 또 인근 홍천군·당진군 등의 전교조지회 등 재야단체들도 반대성명을 내고 집회를 계획하는 등 핵폐기물처리장 반대시위는 충남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8일 하오8시 안면도 전역에 투입된 경찰에 의해 해산된 주민들은 밤샘회의를 계속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주민 중 1000여명은 결사대를 조직하고 휘발유 화염병 등을 만들어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경찰과 대치했다. 주민들은 또 이날 하오 7시 반쯤 안면지서에 몰려가 화염병을 던져 지서건물을 전소시켰으나 지서 무기고에있던 무기는 이날 상오 경찰이 미리 태안 등지로 옮겨 탈취를 면했다. 또 이날 하오 2시 45분쯤 안면지서 앞에서 정보수집 활동 중이던 경찰관 2명이 시위대에 의해 각목으로 구타를 당하고 무전기 1대를 빼앗겼다.

경찰은 주민들이 공무원을 인질로 붙잡고 있는등 사태가 격화되자 8일 하오 4시 20분부터 충남도경 소속 전경 10개 중대 1500명을 동원, 최루탄을 쏘며 승언리 광장에 모여있던 주민들을 해산시켰다. 경찰이 진입하자 주민들은 승언리로 통하는 길목에 폐타이어 등으로 미리 쌓아둔 바리케이드에 불을 지르며 격렬히 저항했고 경찰과 주민들의 대치과정에서 주민이 던진 돌에 충남도경국장의 얼굴이 찢어지는등 주민·경찰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2003년 10월 22일 방폐장건설 예정지인 위도에 해가 지고 있다. 부안에서 위도로 가는 길목, 격포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에 만선깃발 대신 반핵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주민들이 이처럼 격렬한 반대시위를 벌인 까닭은 정부가 아무런 여론 수렴없이 지자체장과 협의만 마친 뒤 방폐장 설치를 강행하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여론이 들끓자 영구처분장이 아닌 임시 저장시설을 설치하려 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임시저장시설이라고 하더라도 주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시설을 주민들에게는 비밀리에 설치하려 했던 점에서 당시 정부 당국의 태도는 극히 안이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당시 정부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끝에 주민 동의 없이는 어떤 시설도 안면도에 설치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안면도 사태는 정부가 주민들과의 소통에서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됐지만 주민들을 무시한 채 사업을 추진하다 역풍을 맞은 사례들은 이후에도 반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역시 방폐장을 설치하려다 강한 반대에 부딪힌 전북 부안,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주민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지경까지 간 경남 밀양, 대규모의 생태계 파괴를 일으키면서 해군기지가 건설된 제주 강정마을, 무리한 조력발전소 설치가 추진되다가 결국 무산된 충남 가로림만 등이 모두 주민 반대 의견에 아랑곳없이 강행된 사례들입니다. 이들 사업은 모두 인간과 자연에 대한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반환경적, 반생태적 사례들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도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DMZ(비무장지대), 민통선 지역에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고속도로를 지으려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 제주 송악산 뉴오션타운, 지리산 산악열차 등 무리한 개발사업이 국내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모두 주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되는 데다 생태계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사업들입니다. 이처럼 무리한 개발사업은 당장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들뿐 아니라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게다가 미래 세대에게는 자연 복원이라는 큰 짐을 떠맡기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라는 사자성어에 딱 들어맞는 사례인 것입니다.

당시 경향신문 사설에서 지적한 아래 내용처럼 정부가 설치하려는 시설이 정말로 아무런 위험이 없다면 더욱더 정부는 주민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정보를 감추는 것은 문제를 키우고, 협의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길일 뿐입니다.

만일 안면도만이 최적지이고 주민 신상에 아무런 위험이 없으며 절대적으로 안전이 보장된 임시 저장소라면 정부는 사전에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고 주민들을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중략)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엄청난 후유증을 익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시설이 근처에 들어선다는데 반사적인 공포감을 느꼈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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