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때문에 목숨 끊은 가족…반복되는 비극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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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도신 작성일20-04-11 10:53 조회1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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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2011년 1월12일 서울 강남구의 한 부동산 사무실 유리창에 전세·매매 물건 정보가 붙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0년 4월10일 집세 고민, 일가 또 자살…부부·두자녀 연탄불 피워놓고
30년 전 오늘, 지하 단칸방 살이를 하던 일가족 4명이 폭등한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4평 반지하 원룸에 세 들어 살던 부부와 8살 아들, 7살 딸이 방 안에 연탄불을 피워놓은 채 모두 숨졌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숨진 가족의 가장인 엄모씨가 집주인으로부터 “66년에 지은 낡은 집을 증축해야 하니 4월 말까지 방을 비워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이사 갈 셋방을 구하러 다녔으나 당시 급등한 전셋값 때문에 방을 얻지 못해 시름하고 있었습니다. 목숨을 끊은 가족의 반지하 원룸은 당시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9만원이었다고 합니다.
1989년 겨울 야외에 나가 눈내린 들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엄씨 부인과 자녀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난한 가장의 죄
“주님께선 좋은 아내를 주셨고 귀여운 남매까지 선물로 주시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한없이 자애로우신 부모님과 착한 동생,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인가. 그러나 한 가지, 다만 한 가지 아버님께도 나에게도 남들처럼 돈 잘버는 재주만은 주지 않으셨다.”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가난이 나에게 물려졌고, 기적이 없는 한 자식들에게도 물려질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끝날 조짐은 없다.”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말을 듣고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를 듣는 시간 외에는 1초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는 엄씨는 가족들을 책임지지 못하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적었습니다.
전세금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유서에 밝힌 엄씨는 “이 살벌한 세상에 외로이 떨어져 살 자식들의 앞날이 고생스러울 것 같아 동반한다”고 써놓았습니다.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놓고 있어야 앞이 보이는 4평짜리 반지하 원룸에서 이웃과 친척들은 장남 엄모군의 일기장을 보고는 모두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합니다.
“4월2일 월요일, 오늘은 엄마가 미싱을 팔았다. TV소리가 잘 들리고 방안이 깨끗해 기분이 좋았다. 저녁에는 엄마가 쇠고기를 사오셨다. 동생과 맛있게 먹었다.”
남편만의 수입으로는 가계가 어렵던 부인 김모씨는 방에 재봉틀을 놓고 삯바느질로 가계에 보탬이 됐으나 당시 전세금에 보태기 위해 이를 76만원에 팔았던 것이었습니다.
옆 방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이웃 할머니는 유난히 정이 많고 친절했던 엄씨 가족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4년 동안 함께 살면서 싸우는 소리 한 번 못들었다. 우리도 곧 떠나야 하는데 지금 갖고 있는 전세금 백만원으로는 어디 가서 물어볼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엄씨는 유서 마지막에 “없는 사람들의 절망과 좌절이 더는 계속되지 않도록 정치·경제 담당자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집주인의 전셋값 인상이 세입자들의 가슴을 얼마나 짓누르는지 짐작케 합니다.
■반복되는 비극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부부의 가난한 수입이었을까요, 전셋값 올린 집주인일까요, 아니면 ‘정치·경제 담당자들의 능력과 지혜’였을까요.
30년 전 기사지만 2020년의 오늘은 그때와 놀라울 만큼 닮았습니다.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은 소득 대비 14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번 21대 총선은 ‘위성정당’ 논란 등이 이슈 블랙홀이 되면서 서민들에게 절실한 부동산 공약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토론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최근 경향신문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정의당·국민의당 등 주요 4당을 상대로 부동산 관련 정책 질의를 한 결과 여당인 민주당은 아파트후분양제와 집값 거품 빼기 등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일률적 집값 하락에 신중해야 한다”며 ‘중립’ 입장을 밝혔습니다. 제1야당인 통합당은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20대 국회 300명 의원 중 85%는 주택을 갖고 있고, 지난 4년간 의원들의 아파트값은 평균 5억원가량 올랐습니다. 10명 중 4명은 다주택자이고, 국회의원 평균 부동산 자산은 22억원이었습니다.
또 최근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재산 공개를 한 정부 고위공직자 3명 중 1명은 다주택 보유자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넉달 전 고강도의 12·16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후 청와대, 경제부총리, 국토교통부 장관, 여당 원내대표가 쏟아낸 ‘고위공직자 1주택 보유’ 권고가 무색해진 겁니다.
이는 ‘없는 사람들의 절망과 좌절이 더는 계속되지 않도록 정치·경제 담당자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달라’던 유서의 바람과 자꾸만 동떨어지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이창윤 기자 noru@kyunghyang.com
▶ 장도리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2011년 1월12일 서울 강남구의 한 부동산 사무실 유리창에 전세·매매 물건 정보가 붙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0년 4월10일 집세 고민, 일가 또 자살…부부·두자녀 연탄불 피워놓고
30년 전 오늘, 지하 단칸방 살이를 하던 일가족 4명이 폭등한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4평 반지하 원룸에 세 들어 살던 부부와 8살 아들, 7살 딸이 방 안에 연탄불을 피워놓은 채 모두 숨졌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숨진 가족의 가장인 엄모씨가 집주인으로부터 “66년에 지은 낡은 집을 증축해야 하니 4월 말까지 방을 비워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이사 갈 셋방을 구하러 다녔으나 당시 급등한 전셋값 때문에 방을 얻지 못해 시름하고 있었습니다. 목숨을 끊은 가족의 반지하 원룸은 당시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9만원이었다고 합니다.
1989년 겨울 야외에 나가 눈내린 들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엄씨 부인과 자녀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난한 가장의 죄
“주님께선 좋은 아내를 주셨고 귀여운 남매까지 선물로 주시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한없이 자애로우신 부모님과 착한 동생,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인가. 그러나 한 가지, 다만 한 가지 아버님께도 나에게도 남들처럼 돈 잘버는 재주만은 주지 않으셨다.”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가난이 나에게 물려졌고, 기적이 없는 한 자식들에게도 물려질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끝날 조짐은 없다.”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말을 듣고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를 듣는 시간 외에는 1초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는 엄씨는 가족들을 책임지지 못하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적었습니다.
전세금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유서에 밝힌 엄씨는 “이 살벌한 세상에 외로이 떨어져 살 자식들의 앞날이 고생스러울 것 같아 동반한다”고 써놓았습니다.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놓고 있어야 앞이 보이는 4평짜리 반지하 원룸에서 이웃과 친척들은 장남 엄모군의 일기장을 보고는 모두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합니다.
“4월2일 월요일, 오늘은 엄마가 미싱을 팔았다. TV소리가 잘 들리고 방안이 깨끗해 기분이 좋았다. 저녁에는 엄마가 쇠고기를 사오셨다. 동생과 맛있게 먹었다.”
남편만의 수입으로는 가계가 어렵던 부인 김모씨는 방에 재봉틀을 놓고 삯바느질로 가계에 보탬이 됐으나 당시 전세금에 보태기 위해 이를 76만원에 팔았던 것이었습니다.
옆 방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이웃 할머니는 유난히 정이 많고 친절했던 엄씨 가족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4년 동안 함께 살면서 싸우는 소리 한 번 못들었다. 우리도 곧 떠나야 하는데 지금 갖고 있는 전세금 백만원으로는 어디 가서 물어볼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엄씨는 유서 마지막에 “없는 사람들의 절망과 좌절이 더는 계속되지 않도록 정치·경제 담당자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집주인의 전셋값 인상이 세입자들의 가슴을 얼마나 짓누르는지 짐작케 합니다.
■반복되는 비극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부부의 가난한 수입이었을까요, 전셋값 올린 집주인일까요, 아니면 ‘정치·경제 담당자들의 능력과 지혜’였을까요.
30년 전 기사지만 2020년의 오늘은 그때와 놀라울 만큼 닮았습니다.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은 소득 대비 14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번 21대 총선은 ‘위성정당’ 논란 등이 이슈 블랙홀이 되면서 서민들에게 절실한 부동산 공약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토론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최근 경향신문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정의당·국민의당 등 주요 4당을 상대로 부동산 관련 정책 질의를 한 결과 여당인 민주당은 아파트후분양제와 집값 거품 빼기 등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일률적 집값 하락에 신중해야 한다”며 ‘중립’ 입장을 밝혔습니다. 제1야당인 통합당은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20대 국회 300명 의원 중 85%는 주택을 갖고 있고, 지난 4년간 의원들의 아파트값은 평균 5억원가량 올랐습니다. 10명 중 4명은 다주택자이고, 국회의원 평균 부동산 자산은 22억원이었습니다.
또 최근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재산 공개를 한 정부 고위공직자 3명 중 1명은 다주택 보유자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넉달 전 고강도의 12·16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후 청와대, 경제부총리, 국토교통부 장관, 여당 원내대표가 쏟아낸 ‘고위공직자 1주택 보유’ 권고가 무색해진 겁니다.
이는 ‘없는 사람들의 절망과 좌절이 더는 계속되지 않도록 정치·경제 담당자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달라’던 유서의 바람과 자꾸만 동떨어지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이창윤 기자 noru@kyunghyang.com
▶ 장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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